[칼럼] 호이안, 회인
[칼럼] 호이안, 회인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2.22 10:31
  • 호수 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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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심 웅 섭
해바라기문화공작소 대표
회인면 눌곡리

아내와 덜렁 베트남으로 한 달짜리 여행을 떠나왔다. 별다른 계획 없이 편도 비행기 표만 끊어서 말이다. 여행 시작 7일째, 다낭을 거쳐 지금은 호이안에 머무는 중이다.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 거점도시인 다낭에서 남쪽으로 4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오래된 항구도시이다. 16~17세기까지 “바다의 실크로드”라고 불리던 중요한 국제 무역항이었으며 주로 중국과 일본, 네덜란드, 그리고 인도 상인들이 드나들면서 이들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독특한 모습의 항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들어 무역의 중심이 다낭으로 옮겨가면서 급격히 쇠락하였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이유로 호이안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남을 수 있었단다. 이후 1999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드는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개발의 축에서 비켜 난 덕분에 유명해졌다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호이안의 첫 느낌은 오래되고 편안하고 예쁘다는 것이다. 우선 건물들은 모두 1~2층의 나트막한 옛날 집들인데 벽돌과 목조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건물들이 도시의 상가처럼 어깨를 바짝바짝 맞대어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오래된 기와와 기와 위의 이끼, 그리고 낡은 벽과 창들이 마치 동화처럼, 그림처럼 정겹다. 거리를 걷노라면 내가 옛날 민화 속으로 들어온 듯,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여행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런데 호이안이 유명해진 것은 단순히 옛날 건물이 많아서는 아닌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도 함께 했음이 눈에 보인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우선 오토바이가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에 온 지 겨우 일주일인데 그놈의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 그리고 무질서함에 슬슬 질리기 시작했었다. 부딪힐 듯 용케도 피해 가는 운전자들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곡예 운전하는 모습이 신기한 것도 잠시, 무엇보다 매캐한 매연 냄새에 은근히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올드타운에는 오토바이와 차가 다니지 않는다. 오직 걷거나 자전거만 허용될 뿐이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인력거와 셔틀 전기차 운행되지만 그리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소음과 매연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걸을 수 있으니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중간중간 그림이나 사진작품을 전시해놓은 갤러리, 오래된 고가를 외지인에게 개방해 놓은 곳들도 제법 눈에 띄는데 물론 입장료를 받거나 판매를 하기는 하지만 일정 부분의 지원이 없이는 유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구시가지 전체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약간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머리를 스친다. 
여기에 호이안에는 환상적인 매력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나룻배들이 슬금슬금 나타나더니 배에 매단 둥그런 색깔 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한다. 호수처럼 잔잔한 투본강은 마치 헤엄치는 반딧불이의 무리를 풀어놓은 듯, 움직이는 불빛들로 가득해진다. 상가들도 아낌없이 불을 밝히고 입구에는 대나무로 만든 색등들을 화려하게 매달아 놓으니 그야말로 온 천지가 불야성이다. 한쪽으로는 야시장이 들어서서 불을 밝히고 번쩍이는 형광 장난감을 파는 상인들에 과일 행상에 강에 띄우는 촛불을 파는 할머니들까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마법처럼, 판타지 영화처럼 밤의 나라가 펼쳐진다. 
 갑자기 한 달 여 전에 끝난 보은 야행이 떠오른다.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회인 뒷골목에 꽃처럼 걸린 청사초롱과 그 길을 한가로이 거닐던 사람들의 여유로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불을 밝히고 웃으며 먹고 마시고 놀던 모습 말이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오래된 마을이라는 공간과 밤이라는 시간, 거기에 주민들의 삶과 문화를 버무렸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축제 기간만이라도 자동차를 제한하고 놀 거리와 먹을거리를 보완한다면 회인이 호이안보다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우연히 들른 호이안에서 회인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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