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
말 한마디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2.15 11:09
  • 호수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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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생호(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보은읍 강산리)

겨울의 한복판으로 가고 있다. 해는 가뭇없이 기울고 서둘러 일과를 마무리한다. 곧 주위는 어둠으로 가득하다. 무심히 올려 다 본 밤하늘의 달빛은 차갑고도 맑다. 총총히 빛나는 별 들도 덩달아 겨울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가만히 바라보는 달과 별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다. 달은 어떤 그리움을 불러내려 하고 별들은 누군가의 사연을 품고 이어주려 한다. 
말없이 말을 전해 준다. 그 아득한 울림과 포용은 크고 넓다. 아무런 고백과 하소연도 묵묵히 들어 준다. 왜곡하지 않고 상처 주지도 않는다. 괜스레 넋두리나 푸념을 늘어놓아도 핀잔을 주지 않는다. 엉뚱한 말을 해도 책망하지 않으며 속마음을 드러내도 소문 내지 않는다. 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무슨 말이든 하게 만든다. 그래서 편안하고 후련하다. 
말은 하지 않아도 말이 된다. 힘이 되는 말은 더욱 그렇다. 토닥토닥 토닥여 주는 누군가의 손길은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와 힘이 된다. 일터에서 돌아온 이에게 건네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는 지친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활력소다. 일탈을 일삼으며 속 끓이는 자녀가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만히 안아주며 ‘어서 와, 배고프지?’라는 말 한마디는 세상에 결코 혼자 내던져진 존재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자극제이다. 대학 수능시험이 끝났고 진학을 위한 고민과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울 수험생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동안 고생 많았고 잘 견뎌줘서 대견하다는 말 한마디 건네주자. 앞으로 뭘 하든 너의 꿈을 응원한다 말해주자. 
 말은 무기다. 칼로 베인 상처는 아물고 치유될 수 있지만 말로 입은 상처는 걸핏하면 되살아나 가슴을 후벼 파고 정신을 어지럽힌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지 말아야 될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가 어떤 저항도 없이 들어야만 할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무게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무너져 내리게도 한다. 
가장 심한 폭력은 언어폭력이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정치인들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은 언제 들어도 뜬금없고 건조하다. 괘씸하고 얄밉다. 자존심마저 상한다. 상처받아 울부짖고 억울해서 소리 지르며 살아보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입에 닮지 못할 막말과 폭언을 내뱉는 무리들은 폭압과 폭력의 주범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거친 언사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고 절망 속에 빠트린다. 알량한 권력을 믿고 안하무인인 그들의 준동은 걸러지지 않은 말들 속에서 어느 순간 분노의 도화선이 되고 결국엔 거침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사랑해’란 말은 의무다. 그 의무를 다해야 할 대상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다. 배우자이고 아들이고 딸이다. 부모님이고 형제, 자매다. 곁에 있고 함께 할 수 있을 때 아낌없이 나누고 표현해야 한다.
‘미안해’란 말은 용기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잘 못할 수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힘들거나 아프게 할 수 있다. 그럴 땐 용기 내어 먼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주저하거나 계산하지 말고 말해야 한다. 
‘고마워’란 말은 보답이다.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고맙다고 말을 할 수 있는 이와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의 관계는 얼마나 따뜻하고 풍요로운가. 전달하는 말 한마디의 진심 속에 담긴 의미는 어떤 선물보다 큰 보람일 것이다. 집과 일터에서, 삶터에서 향기 나는 말 한마디로 서로의 마음을 따뜻하게 채워주고 보듬어 주는 하루 하루가 되자.
마음이 담긴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삶에 온기를 불어 넣는다.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는 서로의 믿음을 돈독하게 한다. 
삶의 지혜가 깃든 말 한마디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된다. 
오늘을 잘 살아내고 힘찬 내일을 열어갈 곁에 있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한마디 말을 생각하는 한 해의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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