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도 걷는다
12월에도 걷는다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2.08 11:09
  • 호수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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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윤 이
보나팜영농조합법인 대표
산외면 대원리

첫눈이 내린다. 지난 주말에 잠깐 눈이 내리긴 했지만 진정한 첫눈은 쌓여야 첫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냥 집에 있을 수만은 없어 점심을 든든히 먹고 나갈 채비를 한다. 목도리와 장갑을 챙기고, 털모자까지 푹 눌러쓰고는 길을 나선다. 대원리에서 옆동네인 신정리를 거쳐 알프스자연휴양림까지 왕복 7km를 걸었다. 알프스자연휴양림에서 돌아올 때는 속리산둘레길로 내려왔다. 숲길이라 인적이 없지만 늦가을에 떨어진 낙엽과 눈이 소복이 쌓여 걷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바스락바스락 뽀드득뽀드득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소리가 난다. 신정리 장승제단까지 오는 길은 많이 둘러와야 했지만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걷는 재미에 수고스러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눈이 내려앉은 묘봉을 보니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12월이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기니 시간이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한 해가 시작되었나 싶어 돌아서면 금세 12월이 눈앞에 있다. 늘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서 그런지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하늘의 뜻을 깨달아 알고 그 뜻에 따라 잘 살고 있는가? 땅을 살리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보고자 시골에 내려와 친환경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보기엔 농사를 잘 못 짓는 애송이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몇십 년을 농사로 먹고 자식들 키워 시집장가 보낸 어르신들이 보기에, 농약 안 친다고 풀을 키우고, 비료를 안 뿌려 잘 자라지 않은 우리 농작물이 얼마나 웃기겠는가. 매년 약 좀 뿌리라고 하시지만 고집 부리며 여태 대원리 땅에서 버텨왔다. 더군다나 돌이 유독 많아 거름기 없는 대원리 땅에서...
생각이 복잡할 땐 걷는다. 걸으면서 어느 때는 생각을 덜어내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생각의 꼬리와 꼬리가 이어져 많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는 자연의 순리 속에서 나의 고민과 애씀이 덧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걷기의 큰 장점은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칼로리 소모뿐 아니라 유산소운동으로 몸이 건강해지고, 허리디스크에도 효과를 보고 있다. 또한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해답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집에서만 골몰하고 있을 때와는 달리 실타래가 풀리듯 조금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때가 있다. 아니, 어떤 큰 문제나 고민이 없더라도 걸으며 마주하는 산과 들의 나무와 이름 모를 꽃들을 보기만 해도 평온해진다. 내 마음속에도 꽃이 피고, 나무들이 뿌리를 뻗어내리는 것만 같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는 마음의 근심, 걱정을 싹 사라지게 한다. 그 청량함이 주는 깨끗함이 내 마음마저 말끔히 씻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자연은 나에게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도시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 속에서 힐링을 찾으려고 주말마다 일부러 시골을 찾고 캠핑장을 찾지만 우리는 늘 자연 속에서 사니 자연이 주는 기쁨과 평안이 너무 당연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은 아니다.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살고자 선택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값없는 선물이다.
지난 가을에는 부지런히 속리산을 오르기도 하였다. 단풍이 온 산을 물들였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속리산을 찾아 북적이더니 가을이 깊어갈수록 나뭇잎들이 바사삭 말라가더니 하나둘 떨어지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루가 다르게 바람이 차가워졌고 해도 일찍 저물었다. 
큰 바위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일품인 문장대와, 석문(石門)의 웅장함을 볼 수 있는 속리산의 가장 큰 봉우리인 천왕봉(1058m)을 번갈아 오르며 걷기의 즐거움과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마저 들어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올라갈 때는 힘들고, 끝이 보이지 않아 두려운 마음도 들었지만 힘든 만큼 의미 있는 걸음이었다. 봉우리와 봉우리가 굽이굽이 이어져 하나의 물결을 이룬 것 같은 절경과 산들의 품새는 올라갈 때의 힘듦을 잊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내려올 때는 훨씬 더 쉽고 빨리 내려올 수 있었다. 우리네 인생도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 
2022년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다시 붙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을 터이다. 가을에 한 해 농사를 잘 갈무리하듯, 12월에는 2022년이 다 가기 전에 한 해를 돌아보며 갈무리해야 할 것이다. 갈무리가 일을 잘 마무리한다는 뜻도 있지만 저장한다는 뜻도 있다고 한다. 2022년 한 해를 잘 마무리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은 훌훌 털어내고, 감사했던 것들, 즐거웠던 일들을 마음 속에 잘 저장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또 새로운 한 해를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있으리라. 돌아봄과 덜어냄,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저장할 것들을 찾아 12월에도 나는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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