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나무를 보며
11월의 나무를 보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2.01 10:19
  • 호수 6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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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철순(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오래지지 않는 꽃이 있었다
오래 마음 비우지 못하는 그릇이 있었다
꽃은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 놓을 수 없었고
비우지 못한 그릇엔 이끼가 끼고 흐려져서
누구의 마른 목도 적셔줄 수가 없었다

잎을 떨구지 못하고 늙어가는 나무를 보며
묵은 잎 떨구지 못해 누추해진 나를,
툭 툭 털어본다

               -  「11월의 나무를 보며」 전문 -

11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절정을 향해 치닫던 고운 이파리들도 이제 누렇게 바래어 땅에 떨어지고 있다. 더러는 아쉬운 듯 나무에 매달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구걸하고 있다. 가을의 끝자락, 11월이다. 아니 겨울의 초입이라고 해야 하나? 
해마다 11월초에 김장을 한다. 춥기 전에 한다고 날을 받아 놓은 것이 올해는 그만, 이른 추위로 영하 5도 까지 내려가는 쌀쌀한 날씨였다. 그래도 고마운 손길이 있어 배추를 절여 주어서 어렵지 않게 김장을 할 수 있었다. 날씨는 춥고 배추를 절여주기로 한 사람한테  얼마나 미안하던지. 내가 힘들다고 다른 사람한테 이런 부탁을 해도 되나하고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김장을 해서 아이들 나눠주고 오빠, 동생 나눠주고 지인한테까지 택배로 보내주니 마음이 뿌듯하다.
그리고 또 주말에 메주콩을 삶아 메주를 매달았다. 작년에는 두말 정도 했는데 올해는 힘이 들어 한 말만 쑤었다. 창문 앞에 메주덩이가 매달려 있는 걸 보면 마음까지 푸근해 진다.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 다음 주말에는 메주콩을 삶아 청국장을 띄워야겠다. 큼큼한 냄새가 난다고 남편은 싫어하지만 3~4일만 견디면 될 일이다. 청국장을 만들어 여기저기 나눔을 하고 남는 것은 얼려두고 겨울동안 김장김치와 함께 요긴한 겨울반찬이 되리라. 어릴 적 청국장 속의 콩을 유난히 좋아하던 동생에게도 보내줘야겠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때가 되면 김장하고, 메주 쑤고, 청국장 띄우고 그런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사먹으면 쉽고 편한데 고생을 사서 한다고 누군가는 그러지만, 어릴 적 먹던 그 맛이 산 것들에서는 나지 않는다. 
다른 것들은 그래도 따라하는데 꼭 한 가지 도전해 보지 않은 것이 있다. 두부 만들기이다. 추운 겨울날 외할머니랑 엄마가 만들어주신 따끈한 순두부랑 금방 만든 고소한 두부는 얼마나 맛이 있었는지. 양념간장에 찍어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힘들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도전해 보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면 그 때 한번 도전해 보리라.
분주하던 11월의 끝자락이다. 이래저래 겨울채비를 하다 보니 11월이 끝나가고 있다. 어떤 나무는 서둘러 잎을 떨구고 겨울준비를 끝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잎을 다 떨구지 못하고 누추하게 서 있다.
이제 곧 겨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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