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지방의 생활문화유산(36)-식품유산(두부 豆腐)
보은지방의 생활문화유산(36)-식품유산(두부 豆腐)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1.24 09:31
  • 호수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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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우리는 쟁기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절구질로 곡식을 가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각종 세시풍속을 통해 자연에 의지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생활문화유산을 만들어 남겼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세월의 흐름 속에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생활문화유산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보은에 남아있는 생활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면서 생활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재창조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 우리지역 ‘보은의 생활문화유산’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많이 들어있는 두부는 선조들의 보약이었다.

콩으로 만든 음식 중에서 ‘밭에서 나는 소고기’로 불리면서, 서양에서도‘살찌지 않는 치즈’로 불리는 두부(豆腐)는 고단백 식품으로, 탈모 예방, 혈압 억제, 혈관 질환의 예방 및 치료에 좋은 식품으로, 소화가 잘되고 칼로리도 낮고 단백질이 풍부해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많이 이용되기도 한다.
식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많이 들어 있어 고기를 자주 먹지 못하던 우리 선조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보약이기도 하였으며, 잔치나 제사 등 관혼상제 때도 빠짐없이 상에 올렸던 식품이다. 지금은 대기업에서 위생적이고, 유통기간이 긴 두부를 만들어 전국의 대형마트는 물론 골목가게에 까지 납품하여 필요할 때마다 한모씩 사서 먹고 있지만, 1980년대까지도 보은지방에서는 대부분 집에서 콩을 불려 맷돌에 갈아 직접 만들어 먹었으며, 읍내의 식료품점에서는 영세한 두부공장에서 만들어진 두부를 매일 받아 팔고는 하였다.
이 당시만 하여도 서울 등 대도시에서는, 새벽마다 두부장수가 리어카나 지게에 두부와 순두부를 가지고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딸랑딸랑 종소리로 새벽잠을 깨우기도 하였다.
두부는 백태나 서리태등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 콩으로 만들며, 녹두나 완두콩처럼 단백질이 부족한 콩은 두부를 만들 수 없다. 두부를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하지만 정성을 무한히 들여야만 하는 음식이다.
필자가 부모님을 뵈러 보은을 찾아오면, 어머님은 의례 직접 농사지으신 노란 콩을 씻어 불리고, 마루에 나무로 만든 큰 함지박을 꺼내 놓고 위에 삼발이를 올려 맷돌을 앉히고, 왼손으로는 연신 입구에 불린 콩을 한주먹씩 집어넣고 오른손으로는 맷손(어처구니)을 돌리셨다. 맷돌 사이로 하얀 콩물이 쏟아지는 모습이 너무 좋아 어머니와 마주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맷돌을 돌린 후, 물을 더 부어 걸쭉하게 만들어 가마솥에 넣고 끓였다. 뜨거운 콩물을 삼베자루에 담아 나무 주걱으로 누르면 물은 아래로 빠지고, 자루에 남아있는 콩비지는 아랫목에 띄워 돼지고기 비게를 넣고 끓여먹는 비지장은 또 하나의 일미였다. 콩물은 다시 오랜 시간 눌어붙지 않도록 나무주걱으로 저으면서 끓인 후, 단백질 응고제인 간수 물을 조금씩 부어주면 단백질이 얼기설기 어울러 지는 순두부가 만들어졌고, 순두부를 광주리에 천을 깔고 넣어 판을 덮고 맷돌을 얹어 탈수시키면 침 넘어가는 두부가 되었다. 두부는 소화율이 95%나 되는 우수한 단백질 식품으로 고려 말기에 중국에서 들어 왔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요즈음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릉 초당두부는 간수대신 바닷물을 응고제로 사용하고 있으며,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의 아버지 허엽이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는 관재수가 있으면 액땜으로 두부를 먹었다고 하는데, 요즘도 경찰서나, 교도소에서 나오면 두부를 먹이는 풍습은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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