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장안면 봉비리
(47)장안면 봉비리
  • 송진선
  • 승인 2022.11.10 11:20
  • 호수 6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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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비팔경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마을, 장안면 봉비리

#오림명월(梧林明月), 쌍용반송(雙龍盤松), 화산향풍(花山香風), 비봉귀소(飛鳳歸巢), 진사래복(進沙來洑), 구병귀운(九屛歸雲), 빙경락조(氷鏡落照), 금계침어(錦溪釣魚)등 봉비팔경이 전해지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

이번주는 봉황이 날아와 살았다는 장안면 봉비리 마을을 소개한다.
장안면 봉비리는 보은읍 동남쪽 약 20km지점에 있는 마을로 새비랭이 라는 옛 지명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낙엽이 휘날리는 진사래들을 지나 마을입구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경운기와 트랙터가 가을걷이를 하는지 분주하게 오고 간다. 
봉비마을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이 많은 마을이다. 지금도 마을 안쪽 작은 언덕에 충혼비를 세우고 16용사들의 영혼을 달래고 있는데, 충혼비는 6.25사변 당시 권택 소위를 비롯한 마을 청년 16명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을 추모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1992년 조성한 공원이 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니 주민 몇 분이 농사이야기를 하는지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방문인사를 나누고 마을소개를 부탁하니 권병하(76)전 이장님께서 마을지명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 “우리 마을 앞에 오림이 라는 곳이 있어요. 현재 교회가 있는 곳인데요. 그곳에는 오림이 샘이라는 물맛 좋은 샘이 있답니다. 그 샘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른 적이 없답니다. 지금도 깨끗한 물을 유지하고 있지요” “혹시 오림(梧林)이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요. 옛 이름으로 오림(梧林)이라고 하지요”

#호국정신이 강한 16용사가 나라와 봉비를 지켜주고 있는 충절의 마을 

봉비마을 뒤 구병산은 나무가 무성하고 숲이 우거져 새들이 많이 살았는데, 오림이 숲에는 봉황 한 쌍이 살고 있었다, 낮에는 마을 앞 빙경 산에서 놀다 저녁이 되면 오림이 숲으로 날아왔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오림(梧林)이는 오동나무숲이라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마을 뒤 꼴미산(化山)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사는 새가 날아가면 좋지 않다고 해서 오동나무 숲을 만들어 오림(梧林)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마을 지형을 보면 남서쪽을 바라보고 뒤쪽은 구병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앞은 삼가천이 유유히 흐르고, 넓은 삼가천을 따라 넓은 진사래(長沙坪)들, 임한리 들이 자리하고 있다. 
권병하 전 이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민 한 분이 “우리 마을에 문바위라는 곳이 있는데요. 옛날에는 그곳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답니다. 큰 문바위, 작은 문바위, 신 바위, 봇짐바위까지 하루에 두 번씩 나무를 하러 다녔지요. 아주 험한 곳이지요” “봇짐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는 데요, 옛날 어떤 머슴이 이곳으로 나무를 하러 갔는데, 산에서 만난 또 다른 나무꾼이 이곳은 험하고 위험해 많은 사람들이 죽는 곳이니 당신도 나무를 하면 곳 죽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봇짐을 싸가지고 달아났다고 해서 봇짐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봉비마을은 청원·상주 간 고속도로가 인접하고, 속리산 IC가 마을 앞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들이 넓어 풍요로운 마을이다. 마을 주민들과 인사를 하고 오림이 샘 옆에 조성되어있는 마을 유래비를 살펴보았다.

(중략) 일설(一設)에 의하면 본동팔경(本洞八景)에 오림명월(梧林明月), 쌍용반송(雙龍盤松), 화산향풍(花山香風), 비봉귀소(飛鳳歸巢), 진사래복(進沙來洑), 구병귀운(九屛歸雲), 빙경락조(氷鏡落照) 금계침어(錦溪釣魚)등 마을 자랑 여덟 가지가 있는데, 봉황(鳳凰)과 쌍용송(雙龍松)에서 봉비용(鳳飛龍)이라 했다는 설과 마을 앞 진사래(長沙坪)가 사토(沙土)여서 바람이 불면 모래가 날려 사비랭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본동(本洞)은 유구(悠久)한 역사(歷史)가 있으나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되고 세종조(世宗朝)때 사직(司直)을 지낸 경주인 이효문(慶州人 金孝文) 아들 호(浩)라는 분이 개척(開拓)하였다. 마을 동북간(東北間)에 구병산(九屛山)이 길게 감싸고 있는데, 봉우리가 아홉이고 병풍(屛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은 나름대로 내력(來歷) 지닌 크고 작은 골이 많다. 큰골에는 사기를 구었던 가마터가 있고, 절골 불당골은 사찰(寺刹)이 있었으며, 승지골은 옛부터 온 마을의 무사안일(無事安逸)을 빌고 풍년(豊年)을 기원하며 매년 정월15일을 제일(祭日)로 정(定)하여, 동제(洞祭)를 지내던  산제당(山祭堂)이 있다. 농경지(農耕地)는 큰골갈기, 새뜸, 함박수, 숲머리, 동막, 등고개, 진사래들이 있으며 속리산 천왕봉(俗離山 天王峯)에서 발원(發源)하여 금강(錦江)의 상류(上流)가 되는 삼가천(三街川)이 마을 앞을 흐르고 진사래 보(洑)가 있다. 설(設)에 의(依)하면 조선 정조(朝鮮 正祖)때 성균진사(成均進士)를 지낸  랑간 정가묵이라는 분이  수리시설(水利施設)이 되어 있지 않은 황량한 넓은 들을 개간하기 위해 막대(莫大)한 재력(財力)과 인력을 들여 북두연(北斗淵)에서 부터 보(洑)를 파서 하개리와 선창(船倉)을 거쳐 진사래에 이르기까지 물길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농사(農事)를 제대로 지을 수 있어 마을사람들이 정진사(鄭進士)의 공력(功勞)을 칭송하여 진사래보(進士來洑) 진사래들이라고 부른다. 서기 1960년 삼가저수지가 축조(築造)되고 1979년 농지(農地)정리로 인하여 진사래 와 함께 함박수 강변들이 수리 안전 옥답이 되었다.  본동(本洞)의 성씨(姓氏)는 진주 강, 안동 권,(경주, 광산, 금녕, 김해, 성산, 영산,)김, 교하 노, 밀양 박, 은진 송, 고령 신, 청송 심, 순흥 안, 남원 양, 함종 어, 영월엄, 성주염, (경주,덕수,용인,전주)이, 평택임, 함안조, (동래,봉화,영일)정, 경주최, 청주한씨【晋州 姜, 安東 權, (慶州, 光山, 金寧, 金海, 尙山, 永山)金, 交河 盧, 密陽 朴, 恩津 宋, 高靈 申, 靑松 沈,  順興 安, 南原 梁, 咸從 魚,  寧越 嚴, 城州 廉, (慶州, 德水, 龍仁 全州)李, 平澤 林, 咸安 趙, (東萊, 奉化 迎日)鄭, 慶州 崔, 淸州 韓氏】등 제성들이 상부상조하며 조화를 이루면 살고 있다... (생략). 
/양화용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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