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농경문화(지게)
(34)농경문화(지게)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1.10 11:02
  • 호수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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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쟁기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절구질로 곡식을 가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각종 세시풍속을 통해 자연에 의지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생활문화유산을 만들어 남겼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세월의 흐름 속에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생활문화유산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보은에 남아있는 생활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면서 생활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재창조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 우리지역 ‘보은의 생활문화유산’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우리 농촌의 필수품이었던 지게는 짐을 얹어서 사람이 등에 지고 나르는 운반도구로,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빛나는 자랑스러운 농기구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지게를 1,500년 전부터 사용하였음이 경주시 황남동 유적에서 나온‘지게 진 인물상’으로 추정이 되고 있다. 

산이 많아 비탈진 경작지가 많았던 보은지방은 특히, 지게에 의존하는 일이 많아, 농촌의 헛간채 처마 밑에는 의례 2-3개의 지게가 보일 정도로 경운기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하루도 없어서는 살 수 없는 필요한 농기구였다. 어깨와 등뿐 아니라 몸 전체에 짐 무게를 고르게 분산하고, 사용하는 사람의 체형에 맞도록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만들 수 있었고, 공간을 차지하는 면적이 좁아 골목길이나 경사진 길에도 쉽게 다닐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그래서 6·25전쟁 때에는 산꼭대기에 있는 군부대에 식량과 무기는 물론, 부상자까지 운반하는데 사용되어 연합국의 군인들이‘A frame’이라고 부르며 감탄하였다 한다. 

단순하면서도 과학적 원리가 담겨진 지게는 농사뿐만 아니라, 새우젓 장수나 옹기장수의 등짐장수 지게,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땅 띠기 지게, 돌 쪽지게, 또는 물지게까지 필요에 따라 일상에까지 널리 쓴 나라는 우리뿐으로, 그야말로 우리는‘지게왕국’이었다. 
지게는 가지가 약간 위로 뻗은 소나무 2개를 위는 좁고 아래로 갈수록 벌어지게 세우고, 사이에 단단한 밤나무로 3-4개의 새장(고정하는 나무)을 걸고, 새장과 다리 발목에 멜빵을 메고, 등이 닿는 부분에는 짚으로 두툼하게 만든 방석을 달아 배김을 방지하였다. 지게는 어린 자식부터 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체형에 맞도록 제작되었으므로, 사람의 나이나 체형에 따라 여러 개를 만들어서 사용하였다. 보은에도 옛날에는 8-9세만 되어도 아버지로부터 지게를 선물 받기도 하였다. 

지게 작대기는 지게를 바로 세우거나, 지게를 지고 일어설 때 반드시 필요한 도구로, 먼 산으로 나무 하러 갈 때는 지겟다리를 두드리며 흥얼거리며 피로를 푸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게의 길이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랐지만, 일반적으로는 평야지대는 일어서기 편하도록 다리가 길었고, 산악지방은 비탈길에 지게 다리가 걸리지 않도록 짧았다. 지게는 우리민족과 오랜 생활을 같이한 관계로, 자연스럽게 지게 싸움놀이, 지게작대기 돌리기 놀이, 지게 목발 들기 놀이, 지게 목발 춤 등 민속놀이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지게는 이제 농촌에서도 경지정리와 함께 농로를 잘 만들었고, 자동차나 동력 운반기계 등이 발달되어 실생활에서 별로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농촌에서 경운기가 들어갈 수 없는 밭에 가끔 운반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도시에서도 까페나 문화공간에서 장식소품으로 사용되고 있어  나무로 만든 전통지게는 십 오륙 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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