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수살맥이와 북두연이 마을의 안녕을 빌어주고 있는 선비 마을, 장안면 서원리
(46)수살맥이와 북두연이 마을의 안녕을 빌어주고 있는 선비 마을, 장안면 서원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1.03 10:45
  • 호수 66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화용 시민기자

우리의 산, 들, 실개천까지도 우리 조상들이 정겹게 불러주던 아름다운 이름이 있습니다. 올해 시작하는 마을탐방을 통해 우리마을 지명에 얽혀 있는 숨어 있는 전설과 선인들의 애환과 발자취를 살펴보고 현재를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공업화, 현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젊은이들의 탈농, 그리고 직장을 찾아 이농하면서 마을의 현실은 고령의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지탱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마을소멸이라는 우울한 미래를 점치기도 하지만 조상이 남긴 마을에는 여전히 공동체가 살아있습니다. 주민의 삶의 터전인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하며 마을탐방 연재를 시작합니다.<편집자 주>


크고 작은 바위가 한폭의 수채화처럼 보이는 황해동의 모습이다.
서원리 마을 회관.
서원리 마을 회관.

이번주는 수살맥이가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는 서원리 마을을 소개합니다.
장안면 서원리는 보은읍 동쪽 약 20km떨어진 마을로 삼가천을 따라 내려오며 형성된 전형적인 산천마을입니다. 마을에는 충암, 대곡, 중봉, 동주, 우암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상현서원(象賢書院)이 있고, 옛 부터 향약의 4대 덕목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마을입니다. 지금도 고시학원과 병무청사회복무연수센터가 있어 교육의 전통을 이어가는 마을입니다.
만추(晩秋)의 계절 늦은 오후에 서원리를 찾아가는데,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휘날리다 차창을 스치고 지나간다. 서원리 입구 북두문이에 다다르니 맑은 물과 산천은 울긋불긋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북두문이는 북두칠성 같이 생긴 못이 있었다고 붙혀진 이름으로 북두연(北斗淵)이라고도 불린다. 북두연을 지나니 치마바위와 단지소(沼), 품페이의 크고 작은 바위가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서원 휴양마을.
서원 휴양마을.
서원계곡 문바위.
서원계곡 문바위.
서원계곡.
서원계곡.
서원리 느티나무.
서원리 느티나무.

#호서지방향약의 본산인 상현서원과 충암, 대곡, 중봉, 동주, 우암선생의 선비정신이 살아 있는 마을
서원리 마을은 지금도 아름다운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길옆 특이하게 생긴 작은 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에서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정용호(68) 전 이장님을 만나 돌의 용도를 물어보니 수살맥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돌무더기와 장승이 있었는데, 1990년대 홍수가나서 떠내려갔고, 이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금의 돌을 세웠다고 한다. 수살맥이는 마을의 안녕과 자연재해를 달래기 위한 신앙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 매년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사이에 마을 대표들이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다. 지금도 시골 마을에 가면 수살맥이가 세워져 있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다. 마을회관을 찾아가니 여느 시골동네와 마찬가지로 가을걷이를 하는 농번기인지라 회관문은 닫혀있다. 마을 앞 작은 매점을 찾아가니 그곳도 문이 잠겨있다. 다시 정용호 전 이장님 댁을 찾아가 마을 소개를 받기로 하고 발길을 돌려 슈퍼를 찾아가니 마침 매점을 보고 계신다. 마을 소개를 부탁하니 우리 “마을 뒤에는 광대 바위와 문바위가 있고, 마을 앞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는 단지소라는 곳이 있었지요. 바로 저기입니다”하면서 슈퍼 앞 바위를 가리킨다. “저곳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목욕하고 물고기를 잡으며 놀던 놀이터였지요. 그리고 바로 아래는 품베이라는 곳이고, 바위 밑에는 깊은 소가 형성되어 있어 친구들과 고기 잡기 놀이를 하며 즐겁게 놀던 추억이 있는 곳이랍니다. 그리고 앞산은 치마바위가 있는 산이랍니다” “혹시 치마바위 전설에 대해서 들은 것이 있는지요?”하며 필자가 물어보니 그건 잘 알지 못한다고 하신다.

치마바위.
치마바위.

필자가 치마바위에 대해 물어 본 것은 보은 현감으로 계셨던 어연 장형광에 얽힌 전설이 이곳 바위와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는데, 그런 전설은 전해지지 않은 듯하다.
정용호 전 이장님과 이야기를 마치고 마을을 둘러보는데, 상현서원이 단풍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을 자아낸다. 상현서원은 남인 계열의 선비들이 지방 문화를 일익(一翼)했던 곳으로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사액을 받은 서원으로 알려져 있다.
상현서원(象賢書院)은 1549년 보은현감이었던 동주 성제원(東州 成悌元)을 중심으로 유림들이 건립을 시작하여 1555년 명종10년에 준공하고, 충암 김정선생을 봉안 후 삼년성서원으로 하고, 1610년 광해군 2년에 상현(象賢)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또한 1672년 현종1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移建)하여 대곡 성운(大谷 成運)을 1681년 동주 성제원(東州 成悌元)과 중봉 조헌(重峰 趙憲)을 1685년에 우암 송시열(尤菴 宋時烈) 선생을 배양하였다. 이와 같이 상현서원은 선현 배향과 후학 양성을 하다 1871년 고종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홰철된 후 강당은 보은향교로 옮겨졌고, 1896년 집례(執禮)였던 김문희(金文熙)가 재건하여 장례원(掌禮院)이라 하였다가 198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상현서원은 외삼문과 1778년에 세운 묘정비(廟庭碑)가 있는데, 예조참의 김양행이 비문을 짓고 사헌부 장령 김종후가 썼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내삼문을 지나 사당인 전면3칸 측면1간의 사우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은의 정신문화를 이루는 근간이 되고 있어 보은중흥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상현서원이 복원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보은의 정신문화를 이루는 근간이 되고 있는 상현서원의 모습.
보은의 정신문화를 이루는 근간이 되고 있는 상현서원의 모습.
마을의 안녕과 자연재해를 달래기 위해 제를 지냈던 수살맥이가 세워져 있다.
마을의 안녕과 자연재해를 달래기 위해 제를 지냈던 수살맥이가 세워져 있다.
서원리에 있는 정부인 소나무의 모습.
서원리에 있는 정부인 소나무의 모습.

상현서원을 나와 황해동 정부인 소나무를 찾아가니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잔디밭에 앉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황해동은 아들바위와 딸 바위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아들바위는 마을 위쪽 끝에 있는 바위로 구멍이 있어 그곳에 돌을 던져 들어가면 아들을 낳고 바로 아래 딸 바위 구멍에 돌을 던져 들어가면 딸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황토로 만든 토석담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는 황해동 마을을 뒤로하고 나오는데,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나무 한 그루가 깊어가는 가을을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황해도 마을.
황해동 마을.
황해동 구곡.
황해동 구곡.
황해동 마을 쉼터.jpg
황해동 마을 쉼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