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농경문화(가을 추수)
(32)농경문화(가을 추수)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0.27 09:24
  • 호수 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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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우리는 쟁기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절구질로 곡식을 가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각종 세시풍속을 통해 자연에 의지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생활문화유산을 만들어 남겼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세월의 흐름 속에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생활문화유산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보은에 남아있는 생활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면서 생활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재창조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 우리지역 ‘보은의 생활문화유산’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보은농경문화관에 전시된 가을 추수를 위해 꼭 필요했던 족답식 탈곡기와 홀태의 모습이다.
보은농경문화관에 전시된 가을 추수를 위해 꼭 필요했던 족답식 탈곡기와 홀태의 모습이다.

1960년대 보은지방의 10월은 가난한 시기였지만, 그래도 일 년 중 가장 풍요롭고, 가슴 뿌듯한 계절이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겨울 내내 식구들의 배를 채워줄 고구마의 긴 넝쿨 걷어내고, 빨간 고구마를 캐어 바수게 달린 지게에 지고 산비탈 밭길을 내려와, 윗방에 수수깡으로 만들어 놓은 통가리에 그득 채워 놓았고, 콩이며, 팥이며, 들깨까지 수확하느라 아침잠을 설치며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쓰면서도, 많은 자식들 먹을거리 장만에 고단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
그 중에서도 10월 달의 가장 소중하고도 주된 가을걷이는 나락의 추수였다. 지금은 농업기계의 발달로 누런 황금들판이 콤바인 하베스터(combine harvester)의 기계소리와 함께 며칠 만에 가을걷이를 끝내지만, 당시에는 모든 작업이 사람의 손에 의지하였던 시기라 우선, 내년에 종자로 쓸 씨앗을 위하여 가장 잘된 곳을 골라 낫으로 베어, 종자가 손상되지 않도록 홀태(그네)로 정성스럽게 털어 보관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벼 베기가 시작되었다.
동네의 벼 베기 순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가난한 농사꾼들이 꼬지를 먹은 부잣집의 논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가난하고 농사짓는 자식이 적은 집의 벼 베기로 일을 끝냈다.
벼 베기는 품삯을 미리 쌀로 받은 꼬지 일꾼이나, 품앗이로 10여 명이 집단을 이루어 낫으로 몇 포기씩 베어서 묶은 후, 건조시키기 위하여 마른논은 논바닥에 볏단을 마주보게 세워 용틀임을 만들고, 물 논에서는 일일이 논둑으로 옮겨 세우느라 해 지는 줄을 몰랐다. 가을철의 건조한 날씨로 볏단이 다 마르면, 지게나 소를 이용하여 구루마에 싣고 와서 마당 한쪽에 커다란 볏가리를 만들어 놓으면, 우선은 비가와도 안심이다.
10월 말경 하얀 된서리가 내리면 이제는 탈곡의 계절이다. 이른 새벽부터 초등학생인 아들이 볏가리에 올라가 볏단을 아래로 던지면, 한 사람은 볏단을 풀어 한 묶음씩 벼 알을 털기 좋게 나누어 옆으로 밀어주고, 탈곡기 뒤에서 3명의 작업자가 발로 발판을 밟아 원통을 돌리면서 벼를 털고, 한사람은 나온 볏짚을 모아 쌓고, 한사람은 탈곡기 앞에 떨어진 짚 부스러기를 갈퀴로 긁어내면서, 고밀개로 탈곡기 앞에 쌓인 벼를 모아 가마니에 넣는다. 탈곡은 7명의 작업자가 손발이 척척 맞아야 힘 드는 줄 모르게 일을 마칠 수가 있다.
모닥불을 피워 옷에 묻어 있는 나락의 수염을 태우고,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인 저녁을 먹으면서 하루를 마치고는 하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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