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고즈넉한 정취와 후덕한 인심의 풍경을 가진 장안면 개안리
(44) 고즈넉한 정취와 후덕한 인심의 풍경을 가진 장안면 개안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0.20 10:07
  • 호수 66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주는 묵향(墨香) 익어가는 마을 장안면 개안리(開安里)를 소개한다. 개안리는 보은읍 동쪽 약 10km 정도 거리에 있는 마을로 깨끗하고 맑은 삼가천 물이 마을 어귀를 휘돌아 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세를 갖춘 마을이다. 또한 마을 뒤로는 구병산 줄기가 길게 뻗어  내려오고, 그 끝자락에 초생 달처럼 보이는 작은 산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 개안리 마을이다. 

개안리를 찾아가는 길은 벌써부터 가을색이 짙어가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낙엽 타는 향기가 필자의 코끝을 자극한다. 모처럼 느껴보는 가을의 향기에 발걸음을 멈추고 낙엽향기에 취해본다.
개안리는 유난히 감나무가 많은 마을이다. 집집마다 한 두 그루씩은 있는 듯하다. 감나무에 달려있는 홍시를 보니 그 옛날 홍시를 따먹던 추억이 떠오른다. 마을안길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홍시가 지천이다. 예전 같으면 감 떨어지기 무섭게 누군가 주워 갔을 것 같은데, 지금은 주워가는 사람이 없는가 보다. 그만큼 넉넉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심은 곡간에서 나온다 했는데, 개안리의 후덕한 인심을 엿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마을안길을 지나 개안리 터줏대감인 선진규 화백을 찾아가는데, 작은 개울가 옆 예쁜 빨래터 하나가 보인다. 50년 전만 해도 마을 입구나 개울가엔 어김없이 빨래터가 있었지만 요즘 엔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잘 가꾸어진 꽃밭 옆 작은 빨래터는 너무나 정감 있게 보인다. 저 빨래터를 사용하는 이는 아마도 어머니 같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 일거라는 상상을 하며, 발걸음을 선진규 화백님이 계시는 덕현재(德鉉齋) 화방으로 옮긴다.
화방을 들어서니 형님께서 반가운 얼굴로 필자를 맞아주신다. “어서와요. 내가 아는 것이 없는데, 특별히 소개할 것도 없고” “그냥 편하게 아시는 대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도 그림을 그리시나요?” “예, 그림 활동도 하고 글도 쓰고 있지요” 화방에는 마을 분들 몇 분이 서예를 하시느라 숙연한 모습이다. “마을이 한적하네요” “마을에 살던 분들이 고령화가 되어 노인들은 많이 돌아가시고 빈집들이 많이 있지요”
“마을입구에 들어와서 보니 빈집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네요. 혹시 귀농하시는 분들이 들어오시려고 하지 않나요? 이 마을은 위치가 좋고 경치가 아름다워 찾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하고 필자가 궁금한 듯 물어보니 “우리 마을에 들어오려고 하시는 분들은 많은데, 집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 보니 빈집이 많이 있어요” “아 그렇군요. 보은은 인구가 많이 줄어들어 귀농귀촌 하시는 분들이 들어오면 좋은데, 그런 문제가 있군요”
사실 필자가 보는 개안리는 역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도시인들이 선호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마을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경부고속도로 문의 교차로에서 상주로 가는 내륙 고속도로가 잘 발달되어 있고, 문의 교차로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속리산 톨게이트가 마을 앞 300m 지점에 있어, 전국 어디서도 진입이 쉽기 때문이다. 또한 속리산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조용한 환경을 갖추어진 마을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을 입구에는 수령 200년 이상 된 소나무 숲이 고즈넉한 선비마을의 정취를 더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마을 뒤쪽에 등 고개라는 곳이 있는데, 예전에는 옹기점이 있었어요” “새비랭이(봉비리) 넘어가는 고개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하고 필자가 아는 척을 하니 “맞아요. 지금도 길이 있지요. 그리고 마을 앞에는 서원 형태의 한학을 공부하던 관선정이 있었답니다” “관선정(觀善亭)이요?” “관선정(觀善亭), 그곳은 명경과(明經科)에 준(準)한 고사(考査)를 거쳐 입학(入學)이 허락된 사람들에 한해 학비(學費)와 침식일절(寢食一切)을 제공(提供)하여 공부하게 했던 곳으로 한때 수백 명이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하던 곳인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덕현재(德鉉齋)화방을 나와 마을 입구에 있는 유래비를 살펴보니 “개안리의 자연유산으로 소나무 숲 두 곳과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깨끗한 하천 선창소가 있다. 비결파에 의거 전국 10승지의 하나로 선창이라 하였다. 문화유적으로는 국가중요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선병국 99칸 가옥과 선병묵 가옥, 선병우 가옥이 있으며, 남헌선정훈선생(南軒宣政薰先生)이 자비(自費)로 건립(建立)한 관선정(觀善亭)이 있었다. 관선정은 전국의 한학도 뿐만아니라 청명 임창순 선생을 비롯한 한학의 대가들을 많이 배출하였다“라고 쓰여 있다. 청명 임창순 선생은 옥천 출신으로 금석학자 이자 서예가 역사학자이다. 특히 성균관대학교 재직 중 4.19가 일어나자 4.25 교수 대모를 주도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유명한 현수막을 쓰신 분이다. 인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분으로 태동고전연구소부지와 서적 등 일체를 한림대학교에 기증하고 1999년 작고할 때까지 많은 연구인재를 배출하신 분이다. 개안리 마을 유래비를 살펴보고 나오며 마을 앞 소나무 숲을 바라보니 100년전 암울한 시대에 사재를 털어 한학발전과 선정(善情)을 실천했던 거부(巨富)의 숨결이 상큼한 솔향처럼 코끝을 스치는 듯하다.
양화용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원 형태의 한학을 공부하던 관선정이 있던 자리.
장안면 개안리 마을유래비.
국가중요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선병국 99칸 가옥의 모습이다.
각지방의 특색있는 단지들을 감상할 수 있는 팔도 단지 전시관.
배산임수의 자세를 갖추고 구병산 줄기가 뻗어 내려오는 장안면 개안리 마을전경.
전에는 감나무의 홍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이 주워가곤 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홍시가 지천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