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 우리 시대의 사명
친일파 청산, 우리 시대의 사명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0.20 09:07
  • 호수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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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생호(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보은읍 강산리)

나라를 빼앗겼던 그때도 지금처럼 하늘은 높고 푸르며, 흰 구름은 무심하게 어디론가 흘러갔을 것이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왔건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주한 현실이 참담하다.
친일 부역자의 손자가 돈과 권력을 손에 쥐고 세 치 혀로 난도질하는 식민지 역사의 치욕이 더욱 비참하고 굴욕적인 시간 들이다.
일본군을 몰아내고 친일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다시 떨쳐 일어난 동학 농민군들은 그들의 기관총 세례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썩어 문드러진 조선을 바로 세우고자 흰옷에 죽창 들고 일어섰던 백성들의 가장 많은 원혼이 떠도는 땅, 우금치 마루의 단풍은 오늘도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운명의 장난처럼 친일 부역자와 그 후손들은 그곳을 무대로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강토와 백성이 유린당하고 능욕당할 때 친일 부역자들은 모든 걸 바쳐 일제의 충견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그의 손자는 기득권 세력의 정점에 올라섰고, 왜곡되고 편향된 식민사관의 나팔수가 되어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후안무치의 전형이다.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비극은 이렇게 되풀이된다.
프랑스는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되자마자 반민족 처벌 법을 만들어 부역자들을 단죄했다. 프랑스가 나치 치하에 있었던 기간은 4년이었다. 프랑스 무장독립 투쟁과 보수의 상징이었던 드골은 가차 없이 부역자들을 처단하면서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지라도, 또다시 민족 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외쳤다. 나치에 협력했던 매국노 중 가장 극형에 처 해진 이들은 바로 언론인들과 지식인 들이었다.
이 땅이 프랑스였다면 조선, 동아도 없었을 것이고 몰염치와 몰지각으로 호의호식하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도 지금처럼 기고만장하며 활개 치지 못했을 것이다. 감히 정진석의 망언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다. 식민사관을 맹종하며 극우 일본인보다 더한 행태를 일삼는 뉴라이트 같은 부류의 반국가적 매국 행위는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전범 국가 독일의 나치 전범에 대한 처벌 또한 집요하고 가혹하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많아도 끝가지 추적하고 찾아내 법정에 세운다. 한편 서독 총리 브란트는 1970년,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나치의 광기에 희생당한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같은 전범 국가 일본은 전쟁광들을 신사에 봉안하고 신처럼 모신다. 그들이 식민 지배했던 국가에서 이루어진 모든 범죄와 약탈을 부정한다. 지금도 군사 대국화를 통한 전쟁 가능한 나라로의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여전히 반성하지 않으며 집요하게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친일 부역자와 그 후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덮고 왜곡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발악은 갈수록 그악스럽고 악랄하며 교활하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나치 부역자 숙청 반대 여론을 잠재우며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했는데, 친일파를 단죄하지 못했던 역사적 과오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우리의 마음은 더없이 무겁고 망막하다.
때마침 이번 10월 26일, 일제 강점기 친일파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한 노인의 60여 년을 계획해 온 복수를 다룬 영화 ‘리멤버’가 개봉한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 왜곡과 부정과 모욕의 역사 앞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여줄 영화 한 편이 그렇게 찾아온다,
식민지 조선에서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딸이며 다정한 누이였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이제 열한 분만 생존해 계신다. 진정 이 나라에 희망과 양심이 있다면 친일 부역자들은 반드시 청산돼야 하고 일제 치하 독립운동가의 명예는 회복되어야 하며, 억울하고 치욕적인 삶을 살다간 모든 분들의 응어리진 마음 또한 풀어드려야 한다. 그때가 언제일지라도 반드시.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직무유기로 이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에게 비겁하고 부끄러운 어른으로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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