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에 담긴 인생
대추 한 알에 담긴 인생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0.12 18:58
  • 호수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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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윤이(보나팜영농조합법인 대표, 산외면 대원리)

가을이 후다닥 지나가려 한다. 비가 며칠 내리더니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졌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잦다. 아직 단풍이 온 산을 물들이지 않았는데 가을이 급히 가버리려 한다. 가을 햇살에 과일들이 제 빛깔을 내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법인데 가을 햇살은 빼꼼 얼굴을 내비치다가 차가운 바람에 쏙 들어가 버린다.
지난 주말에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에 다녀왔다. 충북친환경협회에서 각 군과 시마다 부스를 주어서 친환경 농산물을 파는데 보은군 부스에 지원하러 나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농산물 파는 부스뿐 아니라 아이들과 만들기 체험하는 부스나 동물들 먹이 주는 농장, 꽃들을 예쁘게 꾸며놓은 정원, 실제 여러 종류의 벼를 심어 놓은 논과 텃밭, 농기계 전시, 식물원, 작품 전시회 등 넓은 땅에 다양한 부스와 농장을 꾸며 놓고, 온가족이 함께 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보은군 부스에서는 여러 가지 농산물을 팔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은 대추였다. 역시 보은 하면 대추인가 보다. 생대추를 찾는 이들이 많았는데 없어서 아쉬웠다. 시기적으로 이르기도 하지만 올해 대추 농사가 잦은 비와 태풍 등 기후의 영향으로 대추 농가들이 피해를 입은 탓에 전체적으로 수확량이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기만 하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보면, 붉은 대추 한 알에는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었고, 무서리 내리는 몇 밤, 땡볕 두어 달,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어졌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장석주 시인은 귀촌을 하며 앞마당에 대추나무와 여러 유실수를 심었는데 몇 해가 지난 후 대추나무 한 그루에서 붉게 익은 대추를 보고는 반갑고 기쁜 마음으로 쓴 시가 “대추 한 알”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애송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관찰력과 농부의 마음이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대추 한 알을 맺게 하기 위해서 농부는 봄부터 겨울까지 많은 일들을 한다. 우선 양질의 대추를 많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는 뿌리가 넓게 뻗어 갈 수 있도록 넓고 물 빠짐이 좋은 땅에 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대추나무는 햇빛이 부족하면 웃자라고 열매가 불량해지는데 나무에 햇빛이 골고루 들게 하기 위해 나무의 간격을 넓게 하고, 가지치기를 잘 해주어야 한다. 또 때에 따라 나무에 영양분을 더해 주는 거름과 비료를 주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여러 방법으로 애써야 하며, 내습성이 약하기 때문에 침수되지 않도록 특별히 더 신경써야 한다. 단기간의 침수에도 낙과, 낙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수고를 해야 하니 대추 한 알에는 무서리 내리는 밤과 땡볕뿐 아니라 농부의 수고와 땀이 알알이 맺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추는 조건 없이 내리쬐는 햇살과 바람뿐 아니라 농부의 발자국과 손길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으며 붉게 익어가는 것이다. 귀한 대추 한 알이다. 올해는 대추 한 알, 한 알이 참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다.
우리의 인생도 대추 한 알 같다. 수많은 낮과 밤의 시간들이 허투루 흘러가지 않고, 태풍과 천둥과 번개, 벼락이 내리쳐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마음의 중심 뿌리를 넓게 뻗어내려야 한다. 그리고 무서리 내리는 밤과 땡볕에 쉽게 꼬부라지지 않도록 삶의 가치관들이 굳게 서 있어야 한다. 나의 내면이 단단해야 다른 사람들의 말에 쉽게 상처받지 않고 앞길을 가로막는 수많은 상황들에 꺾이지 않을 수 있다. 그 모든 고통과 기다림, 나의 수많은 노력이 담긴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대추 한 알 같은 나의 인생이 만들어진다. 내 인생의 대추 한 알이 지금은 막 나무를 심은 때인지, 꽃을 피울 시기인지, 거름을 줄 때인지, 뜨거운 햇살에 붉어지는 시기인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엔 대추 한 알의 인생의 열매를 맺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들이 그냥 흘러가는 것 같지만 내가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인생의 열매들이 모양과 빛깔, 맛이 달라질 수 있다.
추수의 계절이다. 돌아보면 감사한 시간들이다. 수많은 비와 태풍에도 추수할 것이 있으니 말이다. 후다닥 가버리려는 이 가을에 추수의 기쁨을 노래하고, 감사와 나눔이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온 산이 붉게 물드는 가을을 눈과 마음에 담고, 대추 한 알에 담긴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며, 긴 겨울을 맞을 채비를 하는 10월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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