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풍경화 같은 아름다운 마을, 장안면 장재리
(41)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풍경화 같은 아름다운 마을, 장안면 장재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9.29 10:27
  • 호수 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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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우리의 산, 들, 실개천까지도 우리 조상들이 정겹게 불러주던 아름다운 이름이 있습니다. 올해 시작하는 마을탐방을 통해 우리마을 지명에 얽혀 있는 숨어 있는 전설과 선인들의 애환과 발자취를 살펴보고 현재를 살 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공업화, 현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젊은이들의 탈농, 그리고 직장을 찾아 이농하면서 마을의 현실은 고령의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지탱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래서 마을소멸이라는 우울한 미래를 점치기도 하지만 조상이 남긴 마을에는 여전히 공동체가 살아있습니다. 주민의 삶의 터전인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하며 마을탐방 연재를 시작합니다.<편집자 주>


독점 마을 전경. 마을 이름의 어원인 표장자가 독을 구워 팔던 마을이라해서 독점이라 부르고 있는 마을모습이다.
독점 마을 전경. 마을 이름의 어원인 표장자가 독을 구워 팔던 마을이라해서 독점이라 부르고 있는 마을모습이다.
독점 마을앞 연꽃 밭. 권역사업으로 추진된 것으로 여름철 고고한 자태의 백련이 활짝피면 마을의 풍경이 달라진다.
독점 마을앞 연꽃 밭. 권역사업으로 추진된 것으로 여름철 고고한 자태의 백련이 활짝피면 마을의 풍경이 달라진다.

#깨끗하게 잘 가꾸어진 마을길과 연꽃 밭이 마을 앞에 조성되어 있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듯한 아름다운 마을

이번주는 장안면 장재리 마을을 소개 한다. 보은읍에서 속리방향으로 약 8km 지점 말티고개 아래에 위치한 장재리 마 을은 대궐터 와 독점이 병합하여 오늘에 이루고 있다. 보은읍에서 출발하여 동녘고개를 지나 자 좌측으로 대궐터가 보이고, 대궐터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300m를 직진, 북 바위와 종쟁이들을 지나 마을입구에 도 착하니 저 멀리 버구리산 허리를 둘러싼 운무가 띠를 두르고 있다. 

마을회관에 도착하니 박숙태(84), 김 일선(77), 전옥례(78)어르신들이 오손도손 이야기가 한창이다. 필자를 보자마자 “어쩐 일로 오셨나요?” 하며 전옥례 어르신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마을 소개 글을 쓰러 왔다고 하니 “예전 우리 마을엔 매년 정월에 새막이제를 지내긴 했지 요”하신다. “새막이제요?” “네! 새막이제요” “새막이제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지요?”하고 필자가 궁금한 듯 물어보니 옆에 계시던 전옥례 어르신께서 “우리 마을에 예전에 했던 새막이제는 매년 정월 열 나흘이 되면 마을 앞 옹달샘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요. 새막이제를 지낼 때는 마을에서 가장 신성한 사람을 제주로 선발하여 제수를 장만하고 우물 앞에 제수를 차려놓고 제를 지내는 거랍니다. 물론 지금은 사라졌지만 제가 시집 올 때만해도 마을 어르신들이 매년 지냈답니다.”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새막이제는 정초에 우물을 청소하고 새로운 물로 지내는 우물 굿을 말하는가보다. 샘굿은 옛날 우물물을 사용할 때 행하던 우리의 고유 풍습인데,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 하는 샘이 항상 깨끗하고 끊기지 말라는 의미를 가지는 수신제로 용왕제라고도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우리의 고유 풍습이다.

독점 마을샘, 우물위에 정자를 세운 모습이다.
독점 마을샘, 우물위에 정자를 세운 모습이다.

#정월 초 열나흘에 마을 우물물을 길을 때는 따바리(똬리)를 한 개씩 우물에 던 지고 물을 길어 밥을 지어 먹었을 정도 로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을 

전옥례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숙태 어르신께서 “우리 마을에는 새막이제도있었지만, 매년 정월초 14일 아침 일찍 세 개의 샘물을 떠다 밥을 해 먹는 풍습이 있었답니다. 샘물을 길어올 때 는 물만 길어오는 것이 아니라 작은 따바리(짚으로 엮어 만든 작은 똬리)를 우물에 한 개씩 던지는데, 그것으로 누가 먼저 왔는지를 확인하고 자기가 몇 번째 왔는지를 확인하며 한해의 복을 빌어답니다” “아! 그런 풍습이 있었군요” “네 우리 마을은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이 있답니다. 그리고 바랑골(바른골)에는 다랑이 논이 많이 있었지요” “바랑골은 어디에 있는 골인가요?” “바랑골은 마을뒤쪽에서 환각골로 넘어가는 골짜기인데요. 예전에는 그곳에 다락 논과 밭이 있었답니다” 회관에서 어르신 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을 둘러 보기 위해 밖을 나왔다.

대궐터. 말티고개를 넘어 복천사로 향했다 세조가 가던길을 멈추고 행궁에서 쉬었던 곳으로 임금이 머물던 대궐이 있었다하여 대궐터라 불리고 있는 마을이다.
대궐터. 말티고개를 넘어 복천사로 향했다 세조가 가던길을 멈추고 행궁에서 쉬었던 곳으로 임금이 머물던 대궐이 있었다하여 대궐터라 불리고 있는 마을이다.
장재저수지. 벼농사의 젖줄이 되고 있는 저수지이다.
장재저수지. 벼농사의 젖줄이 되고 있는 저수지이다.

#표장자가 독을 구워 팔던 독점은 연꽃 이 잘 어울리는 화동(花洞)마을

회관 바로 옆 연꽃 주위를 돌아보는 데, 연꽃밭 둘레길과 마을안길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한참을 돌아보는데, 예쁜 정자가 하나 보인다. 정자아래는 마을 주민들과 어르신들이 예전에 사용했다는 작은 우물이 있다. 가을비가 내리는 독점 마을은 연꽃이 잘 어울리는 화동(花洞)이 다. 독점마을을 둘러보고 대궐터로 발길을 옮겨 마을 유래비를 살펴보는데, 굽이굽이 열두 구비 말재, 고려 태조가 엷은 돌을 깔고 넘었다하여 박석(薄石)재 요. 조선(朝鮮)의 세조(世祖)가 말을 타고 넘었다는 말티(마치=馬峙)고개 아래에 자리 잡은 우리 마을은 독점(篤店)과 대궐터를 합하여 장재리(壯才里)라 하였다. 독점이란 표장자가 독을 구워 팔던 곳이라 하여 그리 불렀다고 한다. 대궐터는 세조 대왕이 신병을 고치기 위해 속리산에 오실 때 행궁(行宮)을 차렸던 곳이라 그리 불렀다 한다. 인조 때 추계추씨(秋溪秋氏)가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숙종(肅宗)때 경주 김씨(慶州金氏), 경종(景宗)때 진주강씨(晉 州姜氏), 철종(哲宗)때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차례로 옮겨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 었고, 1978년 취락구조 개선 사업의 일환으로 전통한옥 마을로 면모를 일신하였으나 지금도 마을 안에는 세조대왕 행궁의 추춧돌과 돌계단이 그대로 남아있고, 행궁을 짓고 앞산 바위에 북을 달고 아침저녁으로 북을 쳐 시간을 알렸다는 북바위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을 앞 유래비를 살펴보고 돌아 나오는데, 장재저수지 위쪽 소실티 골짜기와 수통골에서 단종의 복위를 꿈꾸던 반란세력들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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