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자
그냥, 웃자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9.2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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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생호(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보은읍 강산리)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는 바람의 속삭임으로 귓가를 간지럽힌다. 청명한 날들이다. 맑고 깊은 하늘은 햇빛과 구름과 바람으로 마술을 부리듯 각양각색의 풍경화를 그려낸다. 현란한 아름다움과 변화무쌍함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무덥고 습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었던 여름을 잘 견뎌내고 난 뒤에 맞볼 수 있는 선물 같은 풍경이다.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진다.
계절은 아직 변함없이 제 자리를 찾아가지만 세상살이는 갈수록 만만치 않다. 나뭇가지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 꼴이다. 그 누구의 삶이든 알게 모르게 시련과 아픔의 순간들이 불쑥불쑥 찾아든다. 그런 일들은 떨쳐 내려 할수록 똬리 틀고 주저앉아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누른다. 어떤 날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버겁고 귀찮은 일들이 내던져진다. 머무는 곳에서 마주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고 못마땅할 때도 있다. 답답하고 막막한 일들이 갑자기 밀려오고 덩달아 견디며 이겨내야 할 삶의 무게는 유독 나에게만 가혹하다 느껴진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봐야 하고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순간도 많다. 고개가 절로 숙어지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는 시간들이 길어진다. 어떤 것으로도 쉽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땐 의식적으로라도 심호흡을 하고 어깨를 활짝 펴며 고개 들어 하늘을 보자. 다시 살짝 눈을 돌려 산과 들과 강을 보자. 자유로이 하늘을 나는 새들의 지저귐과 땅에 뿌리내리고 제 몫을 해내려 안간힘을 쓰는 풀과 꽃과 나무를 보자. 그리곤 웃자. 그냥 웃어 보자. 허공에 흩어지는 하찮은 웃음일지라도 그 웃음은 나를 위로해 주고 다독여 줄 것이다. 어떤 표정을 짓느냐에 따라 마음도 움직인다고 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하다는 말을 떠올리자. 
나를 웃음 짓게 하는 건, 돈 버는 재주가 없다는 걸 알기에 많은 돈도 아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 능력도 없기에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니다. 유통기한이 명확한 권력은 더더욱 아니다. 눈을 뜨며 제일 먼저 마주하는 소중한 사람의 얼굴이 나를 웃게 만든다. 일터로 가는 길에 마주하는 풍경들과 바람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고, 읽고 싶은 책이 있어 행복하다. 만나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좋다. 가고 싶은 곳이 있고 갖고 싶은 소중한 물건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 밤의 고요와 휴식으로 충만하다. 좋은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살아가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집과 일터이다. 그곳엔 당연히 웃음이 넘쳐흘러야 한다. 존재만으로 미소짓게 하는 사람, 건네는 말과 보이는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사람은 샘물 같은 사람이다.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 얼굴에 핀 웃음꽃이다. 시간이 흘러도 시들지 않는다. 웃음꽃 향기는 시공을 초월해 넓고 멀리 퍼져 나간다. 그 꽃을 내 가족과 일터에서 만나는 동료들, 어느 공간에 함께 머무는 그 누군가의 얼굴에 활짝 피어나게 하는 것은 축복이다.
웃음은 묘약이다.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보약이요, 마음을 치유해 주는 명약이다. 이 신묘한 약은 의사의 처방전 없이 스스로 조제가 가능하다. 약 값은 무료, 유통기한도 없다. 식전, 식후 가리지 말고 아무 때나 복용할수록 효과는 좋다. 과다 복용도 적극 권장이고 여럿이 나눌수록 효과는 배가 된다. 절대 부작용이 없는 우리 삶의 특효약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작은 웃음의 씨앗을 안겨 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한바탕 웃음으로 삶의 무게를 덜어내 주고 울음을 웃음으로 바꾸어 놓을 줄 아는 사람의 존재는 거룩하다.
태어날 때 울음은 존재의 알림이지만 마지막 순간에 웃음은 살아온 날들의 증명이다. 언젠가 먼 길 떠나는 날 그 길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웃음을 게을리하거나 아까워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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