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인생(人生 : 백일과 돌잔치)
(27)인생(人生 : 백일과 돌잔치)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9.21 16:26
  • 호수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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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우리는 쟁기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절구질로 곡식을 가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각종 세시풍속을 통해 자연에 의지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생활문화유산을 만들어 남겼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세월의 흐름 속에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생활문화유산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보은에 남아있는 생활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면서 생활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재창조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 우리지역 '보은의 생활문화유산'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안동민속박물관에 전시된 돌잔치 상의 모습.
안동민속박물관에 전시된 돌잔치 상의 모습.

요즘은 의술이 발달하여 영아 사망률이 극히 낮지만, 전에는 일제 총독부의 통계에 따르면 첫돌 전 영아 사망률이 무려 73%에 달하였다. 
즉, 아기가 100명이 출생하여도 첫돌까지 25명밖에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럴 정도로 태아가 엄마 몸속에서 열 달 동안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세상에 나와도 백일(百日)을 맞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큰 축복이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부모님들은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출산 후 백일이 되면,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다는 뜻에서 특별히 그 날을 축하하는 백일잔치를 하였다. 
하객들이 모여 태어난 아기와 첫 대면하는 날이기도 하였던 백일잔치 때는 아기 머리숱이 많고 검게 잘 자라라고 배냇머리를 깎아주고, 배냇저고리와 달리 오래 살라고 옷고름을 길게 만든 색깔 있는 백일 옷을 입히고, 정성스럽게 백일 상을 차려 삼신께 정성을 드리고 나서,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백일상은 흰 밥과 미역국은 물론, 백 살까지 장수하라고 백설기를, 부정을 막으라고 붉은색의 수수팥떡을, 속이 단단하라고 인절미를, 그리고 속이 꽉 차라고 고물을 넣은 송편과 마음을 넓게 가지라고 고물을 넣지 않은 속이 빈 송편을 같이 올렸다. 
또한, 백일 떡은 백 사람과 나누어 먹어야 아기가 장수한다고 믿어 자손 귀한 집은 이웃과 친지는 물론 길 가는 행인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이렇듯 백일잔치는 대부분 아기의 건강을 축복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행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던 시절이라 백일잔치는 누구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도시와 농촌이 달랐고, 아들과 딸에 따라 달랐으며, 장남과 차남에도 차이가 있어, 1960년까지도 딸의 백일잔치나 돌잔치를 하여주는 집은 아주 드물었다.
또한, 보은에서 6.25동란 때 백일이나 돌이 되었던 아이는 살아남았을 경우에 집안에서 복덩이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전쟁 중이지만 잔치를 위하여 많은 떡을 준비하였는데, 갑자기 피란(避亂)가라는 이장의 독촉에 먹지 못하고, 음식을 챙겨 피난 가면서 가족들을 굶주림에서 구제하여준 결과였다. 
요즘은 영아 사망률은 극히 낮지만, 출생률이 0.81%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백일이나, 돌잔치가 있으면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 그리고 고모나 이모들이 모두 참석해 지갑을 탈탈 털리면서도 마냥 행복해하는 모습은 자주 보았으면 하는 풍경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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