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인생(人生 : 금줄)
(26)인생(人生 : 금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9.08 09:14
  • 호수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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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우리는 쟁기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절구질로 곡식을 가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각종 세시풍속을 통해 자연에 의지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생활문화유산을 만들어 남겼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세월의 흐름 속에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생활문화유산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보은에 남아있는 생활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면서 생활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재창조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 우리지역 '보은의 생활문화유산'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회인면 중앙리에 있는 내아(현감이 살던 집)의 대문 금줄이다.
회인면 중앙리에 있는 내아(현감이 살던 집)의 대문 금줄이다.

거리두기를 처음으로 이용한 민족은 어디일까? 아마도 우리민족을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는 요즈음, '코로나'로 인하여 국경을 폐쇄하고, 국내에서는  이동을 제한하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등 거리두기로 난리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 이치를 까마득한 옛날부터 터득하여 조용하면서도 슬기롭게 금줄을 이용하여 거리두기를 실천해왔다. 

금줄은 우리의 사회적 규약이었으며,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자율적 공공질서이기도 하였다. 금줄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소중한 자식이 태어날 때 대문에 거는 출산 금줄이야말로 최고의 과학적인 거리두기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의학이 발달하여 수많은 병원균을 막기 위해 소독을 하고, 신생아실에 따로 격리헤 접근을 막고, 몸으로 침투해도 약이 개발되어 영아 사망률이 극히 낮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다. 한 부부가 10명 이상을 출산해도 마마(천연두)등 전염병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절반 이상이 죽는 취약한 시대에 금줄은 외부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 면역력이 없는 아이와 산모를 보호해 주는 최고의 수단이었고, 출산의 기쁨을 온 동네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표식이었고,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해 하는 이웃들에게 금줄에 꽂는 표시물을 달리해 신속히 알려 주는 통신수단이기도 하였다. 

또한, 금줄은 출산 외에도 농부들의 소중한 재산이요 동반자인 소가 새끼를 나면 외양간에 금줄을 쳐 보호하여 주었고, 동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동제사(洞祭祀)를 지낼 때에는 대상인 산신당이나, 동네어귀의 돌탑, 장승, 나무에 흰 창호지를 잘라 끼운 금줄을 둘러 부정함을 멀리하였으며, 가을에 된장을 담그면 장독에 금줄을 둘러 신성시하고 정성을 다 했다. 

금줄은 토지나 다산(多産)을 의미하는 짚을 이용하여, 신성으로 악귀를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왼손 새끼를 꼬아, 세상을 정화(淨化)하는 숯을 꼽고, 아들이면 귀신이 무서워하는 빨갛게 익은 남자의 성기를 상징하는 고추를 같이 끼웠고, 딸이면 푸른 상록수로 여자의 절개를 상징하는 솔가지를 끼웠다. 또한 지방에 따라서는 미역꼭지나, 작은 돌을 추가하여 꼽기도 했다. 

출산 금줄이 쳐 있는 집에는 그 집의 식구 외에 다른 사람은 출입이 금지되었다. 다른 사람이 들락거리면 부정함이 차단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산신(産神)이 노하여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출산의 금줄은 대체로 세이레(21일) 동안 치고 거두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일곱이레(49일) 동안 두기도 했으나 금줄을 오래 걸어두면 혼사가 늦어진다는 속설도 있었다. 금줄은 거두어서 깨끗한 장소에서 태우기도 하고, 대문 옆 담이나 울타리에 놓아 자연히 썩도록 해서,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는 집 대문 귀퉁이에는 몇 개씩의 금줄이 얹혀있기도 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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