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보신탕(補身湯)
(24)보신탕(補身湯)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8.25 09:19
  • 호수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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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우리는 쟁기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절구질로 곡식을 가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각종 세시풍속을 통해 자연에 의지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생활문화유산을 만들어 남겼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세월의 흐름 속에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생활문화유산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보은에 남아있는 생활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면서 생활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재창조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 우리지역 '보은의 생활문화유산'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자주 먹던 음식으로 영양 보충원이기도 했다.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자주 먹던 음식으로 영양 보충원이기도 했다.

2022년 올해도 말복(末伏)이 지났다. 대통령 부인까지 나서서 개 식용(食用) 종식을 주장하고, '동물자유연대' 등이 초복을 맞아 서울의 용산역 광장에서 '빠르고 완전한 개 식용 종식 2022 정부 규탄 국민 대집회'를 열 예정이었다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올해는 전국적으로 몇 마리나 사람들의 몸보신(補身)을 위해서 희생되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개고기 문제는 매년 삼복더위만큼이나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된다. 보은에도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계곡이나 하천에서 개를 잡아, 끓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고, 보신탕을 파는 식당 또한 꽤 많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논란 때문인지 고기의 맛도 비슷하면서도 호불호(好不好)를 타지 않는 염소탕으로 전환되어 보신탕집은 몇 집 안 남았지만, 올해 말복 때도 개고기가 떨어져 손님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서는 보신탕 애호가는 그래도 여전히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는 측은 보신탕 먹는 사람들을 미개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개고기는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자주 먹던 음식으로 조선의 정조 임금도 보신탕을 즐겼으며, 최근까지도 오랜 기간 병에 시달린 환자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영양 보충원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보신탕이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해외 여론을 의식하여 1983년부터 도심과 도로변에서 보신탕 판매가 금지되자 이를 피하고자 이름도 '영양탕, 사철탕'으로 간판이나 메뉴판이 바뀌었고, 속어로 '멍멍탕'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신탕집이 등장한 것은 1770년 충남 서천군 판교면의 '백중장'으로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은거하던 사람들의 공동체 부근이었으며, 지금도 보신탕을 절대 금기시하는 불교인들에 비하여 기독교인 중에는 보신탕을 허용하는 분들이 비교적 많으며, 선비들이 많이 살던 안동지역에서는 최근까지도 집에서 장례를 치를 때에는 보신탕을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보신탕을 가장 강하게 비난하는 프랑스도 1910년대까지는 개고기를 파는 집이 있었고, 살아있는 원숭이의 두개골을 열어 뇌를 파먹는 식당도 있었던 나라이기도 하다.
보신탕 애호가들은 "같은 동물인데 왜 소, 돼지, 닭, 염소 고기는 먹어도 되고 개는 안 되는 거야? 모두 초식 주의자가 되어야지"하고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아마도 많은 사람이 애완견을 키우면서 자주 접촉하는 데 비하여, 소나 돼지 닭 등은 자주 접촉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동물 중 유일하게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아 개 호텔, 개 화장장, 개 공원묘지가 생겨나는 요즈음, 이제는 애완견과 식용 개를 구분하여 많은 논란을 잠재우고, 우리의 전통 복날 음식문화를 보존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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