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는다는 것
익는다는 것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8.1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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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윤이 (보나팜영농조합법인 대표/산외면 대원리)

서울과 경기, 강원 등 중부지방은 집중호우로 한여름 물난리인데 절기상으로는 입추가 지났다. 가을에 들어선 것이다. 봄에 뿌린 씨앗이 자라가고, 과실나무에서도 열매가 열려 점점 커지고 익어가고 있다. 참깨와 들깨, 고구마, 고추, 호박 등이 익어가고 가장 늦게 열리는 과실인 대추나무에서도 콩알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대추가 자라고 있다. 찹쌀이나 당뇨에 좋다는 기능성 쌀인 밀키퀸은 벌써 이삭이 패기 시작했다.
밭의 작물과 과일들은 뜨거운 햇살과 간간이 내리는 비에 쑥쑥 자란다. 그러고 보면 땅심은 참 대단한 것 같다. 마치 어머니의 품처럼 씨앗을 품어주고, 땅이 가지고 있는 모든 영양분을 내어주고, 뿌리를 내려 자라게 하지 않는가? 그래서 어머니를 대지, 혹은 땅에 비유하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자녀들을 품고,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녀들이 잘 자라도록 양육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보니 인생의 후반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이 된다. 요즘은 익어가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 중간에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갑니다"라는 가사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처럼 나도 육체적으로는 쇠약해지고 늙어가지만 내면은 단단해지고 익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익어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 고사리처럼 익어가면 고개 숙이는 삶일까? 연약하고 부족함으로 수많은 실수를 했던 날들, 그러면서도 지기 싫어 고개 빳빳이 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만 돌렸던 날들을 뒤로 하고 이제는 실수를 인정하고, 남보다는 나의 부족함을 보면서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게 사는 삶이 익어가는 삶일까?
국어사전에서 '익다'를 찾아보니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1. 열매나 씨가 여물다. 2. 고기나 채소, 곡식 따위의 날것이 뜨거운 열을 받아 그 성질과 맛이 달라지다. 3. 김치, 술, 장 따위가 맛이 들다. 4. 불이나 볕을 오래 쬐거나 뜨거운 물에 담가서 살갗이 빨갛게 되다. 5. 썩히려고 하는 것이 잘 썩다. 6. 사물이나 시기 따위가 충분히 알맞게 되다. 내가 익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을 때 국어사전의 의미로는 1번이나 3번의 뜻과 맞을 듯하다. 인생의 열매가 여물어 껍질이 단단해지고 맛이 드는 삶, 된장이나 간장처럼 안으로, 안으로 달여져 깊어지는 삶이 내가 기대하는 익어가는 삶이 아닐까 한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나잇값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경험한 것만이 다 옳은 것인 양 주장하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들이다. 일명 '꼰대'라고 할 수 있다. “라떼(나 때)는 말이야" 하고 말하는 사람들 말이다. 나도 가끔은 아이들에게 무심결에 “엄마 때는 이랬어" 하고 말할 때가 있다. 엄마 때에 비하면 너희들은 정말 좋은 형편에서 사는 거다, 엄마 때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너희들은 좋은 환경에서 사는데도 그것밖에 못하니 등의 숨은 의미가 있는 말일 테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런 말들은 자녀들의 마음에 와닿는 말이 아닐 것이다. 자녀들은 나와 같은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젊은 세대들은 그들 나름대로 대학 입학을 위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고 취직, 스펙 쌓기 등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 단순하게 발전에 의한 편리나 환경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후숙이 되는 채소나 과일들 중 아직 채 익지 않아도 따서 상온에 놔두면 익어가는 것들이 있다. 토마토나 고추, 바나나, 감 등이 그렇다. 이러한 채소나 과일들은 익지 않은 채로 따서 상온에 놔두면 하루가 다르게 익어간다. 익어가면서 더 맛있어진다.  
꼭 후숙이 아니더라도 나무에 달린 채 익어가고 여물어가는 열매처럼, 항아리 속의 간장과 된장이 안으로 안으로 달여지면서 깊은 맛을 내는 것처럼 익어가는 삶을 살고 싶다. 말과 행동이 설익거나 풋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번 더 생각해서 말하고, 말하기보다는 들으면서 남의 말에 공감해주며, 조언이나 충고의 말보다는 힘들었겠다고, 누구나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 같다. 모쪼록 이번 집중호우로 한 해 농사가 피해 입지 않고 잘 자라 추수의 때에 많은 곡식과 열매를 거두기를 바란다. 인생이라는 가을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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