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보은 정신의 산실 보은읍 종곡리
(37)보은 정신의 산실 보은읍 종곡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8.11 09:47
  • 호수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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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종곡리 마을전경.
종곡리 마을전경.
북처럼 생긴 종산의 모습.
북처럼 생긴 종산의 모습.
종곡리 마을 전경
종곡리 마을 전경
모종골 전경.
모종골 전경.

#조선 명종 때 대곡 성혼 선생이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토정 이지함 선생들과 함께 산수를 즐겼던 마을
벌써 가을이 오는지 종곡리를 찾아가는데 매미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이번주는 보은 정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종곡리를 소개한다.
종곡은 보은읍에서 북동쪽으로 약 4km 위치에 자리 잡은 마을로 예전에는 북실12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크고 작은 자연부락이 많이 있던 지역이다. 지금도 한남금북산맥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소개하는 종곡리는 북처럼 생긴 종산(鐘山)이 있어, 북실 또는 종곡(鍾谷)이라 하였는데, 종동리(鍾東里), 종남리(鍾南里), 월안리(月岸里)와 자연부락 동편리, 모종골, 삼성골을 병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세강재와 덕고개를삼성 골에서 대 바위 넘어가는 고개)를 넘어가는데, 최근 새로운 마을이 하나 조성되었는지 못 보던 예쁜 마을 하나가 보인다. 마치 휴양림처럼 보이는 마을은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전경이 뛰어나 귀농·귀촌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선호할 것 같은 마을이다. 세강재를 지나 종곡리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요즘 보기 드문 정겨운 나무 장승이 나그네를 반겨준다.

삼성골 느티나무.
삼성골 느티나무.
김중식 공덕비.
김중식 공덕비.

#추노학(鄒魯學 : 공자와 맹자를 가리킴)의 본향이 되어 학맥이 이어오는 전통의 마을
장승거리를 지나 마을회관 앞에 체험관이 보인다. 잘 조성된 연못과 정자가 마을 수호나무와 잘 어우러져 한 폭의 정원을 보는 듯하다. 현대식 체험관 앞에 세워진 공덕비 하나가 궁금해 살펴보니 의학박사 김중식 송덕비(醫學博士 金仲植 頌德碑)라고 쓰여 있다. 내용은 의학박사 김중식은 소아과 전문의로 병든 어린이를 인술(仁術)로 구료(救療)하여 명성을 얻었고, 정직하고 온공(溫恭)하여 주위로부터 신망이 받았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고향 발전에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다. 북실은 그의 22대조 판도판서휘장유(版圖判書諱將有)공이 고려 말에 어지러운 정난(政亂)을 피해 낙향(落鄕)하여 이룩한 마을로 후예가 세거(世居)하여 창성하면서 경주김씨(慶州金氏) 집성촌으로 명성이 깊은 마을이다. 충암 김정 선생을 비롯한 명환(名宦),석학(碩學)과 충효열사가 줄지어 나왔고 대곡선생(大谷先生)이 입거(入居)하여 남명(南冥) 조식 선생, 화담(花潭) 서경덕 선생, 토정(土亭) 이지함 선생, 동주(東洲) 성재원 현감 등 산림처사(山林處士)들의 발길이 빈번해지니 추노학(鄒魯學 : 공자와 맹자를 가리킴)의 본향이 되어 지금까지 뿌리 깊은 학맥과 인맥이 이어오는 전통의 마을이다.
2008년 농촌 부흥을 위하여 도시민을 상대로 체험 마을을 조성하게 되었는데, 김 박사가 세전지물(世傳之物)로 금싸라기 땅을 쾌척하여 체험관을 완공하게 되었다고 쓰여 있다.

신씨 의열비 전경
신씨 의열비 전경
고령 신씨 의열비
고령 신씨 의열비
다라니 마을 뒷산.
다라니 마을 뒷산.
다라니 샘물.
다라니 샘물.
마을 체험관.
마을 체험관.
회관 전경.
회관 전경.

#충렬이 드높고 낯선 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정감이 넘치는 마을
체험관을 지나 모종 골을 가는 데 저 멀리 작은 누각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비문을 살펴보니 증정부인고령신씨의열비라고 쓰여 있다.
안내문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니 20세에 김덕민(윤휴의 외할아버지)에게 출가하였다. 정유재란 때 산골로 피신하다가 왜적을 만나 소지하고 있던 칼로 적을 찌르고 자결하였다. 충과 열이 드높임을 사책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다.
신씨의 의열비를 살펴보고 동편으로 가는데, 나무 그늘 아래 마을 주민 세 분이 오손도손 이야기하고 계신다.
주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 소개를 부탁하니 김홍림 어르신께서 "예전에는 우리 마을 앞에 큰 개울이 있었답니다.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마을 앞 냇가에서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놀았답니다.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였지요" "아! 그러면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냇가가 있었나 보네요?" 하고 필자가 여쭈어보니 "그럼요. 저수지가 생기기 전에는 맑은 냇물이 있었지요. 그뿐만 아니라 마을 앞에 두레박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답니다. 그때는 그 우물로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마을 대소사를 논하는 장소였답니다" 하신다.
동편 주민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라니(월안)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달 모양의 산(금덕봉) 아래 마을이라고 하여 다라니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마을 앞 넓은 공터에 차를 세우고 마을 사진을 찍고 있으니 주민 한 분이 나오신다.
마을 소개를 부탁드리니 78세이신 아주머니께서 (이름은 끝내 밝히지 않으셨다) "우리 마을은 마을 위에 샘이 하나 있어, 그 우물로 마을 사람들이 먹고살았지요. 내가 23세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마른 적이 없었어요. 지금도 그 우물이 있답니다. 한번 가보세요" 하시면서 우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신다.
마을 뒤편 깨끗하게 조성된 우물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듯하다. 두꺼운 덮개로 덥혀있어 우물 속을 볼 수는 없었지만 양지바르고 오염원이 없어 깨끗한 우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라니 마을 어르신과 이야기를 끝내고 나오는데, 구룡티에서 넘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한결 가볍게 해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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