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주지 지낸 월탄스님 입적
법주사 주지 지낸 월탄스님 입적
  • 송진선
  • 승인 2022.08.07 16:59
  • 호수 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0년 청동미륵대불 불사, IMF 전까지 동양최대 불상 보자 관광객 인산인해 이끌기도

법주사 주지스님이었던 월탄스님이 지난 8월 4일 입적했다. 법납 68년·세수 86세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다비식은 8일 수행자와 신도들의 애도속에 월탄스님이 마지막까지 머물며 수행했던 단양 대흥사에서 이뤄졌다.

대흥사는 1400년 전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후 200여 년 동안 폐허였으나 월탄스님이 지금의 모습으로 중창했다.

2011년 조계종 최고 품계인 대종사 법계를 받은 월탄스님은 1937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화엄사에서 금오선사를 은사로 득도하고,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60년 11월 해인사 강원 사교과에 수학 중 전국승려대회에 강원 대표로 참석해 동산·효봉·금오·청담 스님 등을 모시고 불교정화운동에 앞장섰다.

동국대학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조계종 4~6, 8~10대 중앙종회의원, 8대 중앙종회의장을 지냈다.

법주사와 조계사·전등사 주지와 총무원 총무부장, 초심호계위원장, 원로의원, 법계위원장, 동국대 승가총동문회장, 사단법인 불교발전연구원 이사장, 불교신문사 사장을 지냈다.

법주사·청주 용화사·단양 대흥사 회주로 참선수행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해 1988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특히 법주사 주지로 재임한 1984년부터 1992년까지 법주사를 융성하게 하고, 속리산의 르네상스 시대를 갖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주지가 되자마자 법주사 경내 왼쪽 미륵부처님을 종전의 시멘트 불상을 해체하고 1990년 4월 11일 동양 최대의 불상인 청동 미륵대불을 회향했다. 이 불상은 높이만도 38미터에 이르며 소요된 청동만도 160여톤, 공사인력은 연인원이 3만5천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회향식에서는 1989년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도 모셨다. 법주사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이 된 것이다.

법주사 청동대불 회향식 후 사찰에서는 최대의 불상을 만드는 붐이 일기도 했다. 법주사 청동대불은 이제 더 이상 동양 최대의 불상은 아니지만 청동에서 지난 2015년 10월 개금불사를 해서 금불로 외양은 바뀌었지만 미륵대불은 여전히 법주사를 대표하며 그 이름값을 하고 있다.

월탄스님의 월력으로 동양 최대의 청동대불이 법주사에 조성되면서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속리산을 찾는 관광특수를 누렸다. 속리산의 공식적인 탐방객 기록은 1992년부터 시작됐는데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에 따르면 1992년 217만9천명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법주사 청동미륵대불을 회향했던 1990년과 1991년 방문객 통계는 없는데 속리산 상가 주민들이 당시를 기억하기로는 인도는 물론이고 차도까지 운집된 인파는 법주사를 가는 동안 떠밀려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같은 특수는 IMF가 터지기 전인 1997년까지도 계속됐다. 1997년에도 202만1천명이 방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IMF가 터진 1998년 속리산 관광객은 127만여명으로 줄었고 이후 2000년대 초반 110만여명에서 최근엔 70만명대로 크게 추락했다.

이같이 속리산 관광경기의 르네상스 시대는 법주사, 그것도 청동미륵대불, 그리고 이 불상의 불사를 주도한 월탄스님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월탄스님은 1992년 법주사 주지 임기 만료 후에는 주지 승계 문제로 혼란을 겪기도 했다. 당시 조계종단이 내분을 겪으면서 강북총무원에서는 유월탄 주지에게 임명장을 송부했는데 강남총무원 채벽암 문중에서는 고정일 스님을 주지로 내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강남총무원과 강북총무원과의 대립이 심화되자 법주사는 문중회의를 개최해 조계종단 화합이 이루어질 때까지 법적인 주지직은 월탄스님이 맡고 정일스님은 법주사 주지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위임장과 주지 직인 및 인사·재정권을 맡는 등 실질적인 주지직을 승계하는 것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이후 월탄 스님은 법주사내 미룡당으로 거처를 정했다.

월탄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 당시 서의현 3선을 가결한 중앙종회에 불참하고, 불참 배경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1990년 제26대 총무원장 선거와 1994년 제28대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98년에는 당시 총무원장이던 월주 스님이 종헌종법을 위반하고 3선 연임을 했다며 정화개혁회의를 조직해 종권에 조직적으로 저항하다 승적을 박탈당했다가 2006년 구제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