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외할머니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7.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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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철순 / 시인 / 관기약국 근무

나에게 외할머니는 엄마 같은 존재다. 어릴 적 함께 잠을 자기도 하고, 자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고, 긴 머리를 예쁘게 땋아주셨고, 용돈까지 챙겨 주셨다.
농사일에 많은 식구 거두느라 무심했던 엄마와는 달리 모든 엄마의 역할을 외할머니가 해주셨다. 일제 때부터 동네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팔았던 외할머니는, 가난한 우리들 학용품값을 챙겨 주시곤 했다. 외할머니는 얼마나 부지런한지 잠시도 그냥 앉아있질 않았다. 이웃분이 마실이라도 오면 바느질거리를 찾아 이야기를 하면서도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바느질을 하곤 했다. 음식 솜씨도 좋아 못하는 음식이 없었고. 바느질도 누구보다 곱게 하셨다. 그런데도 박복하여 유일한 자식인 우리 집에 함께 살았다. 아니, 우리가 외할머니 집에 얹혀살았다.
인정은 얼마나 많은지 불쌍한 사람을 거두어 양아들로 삼기도 했다. 그 양아들이 자라 부산에서 성공을 해서 "어무이, 어무이"하면서 선물을 한 보따리씩 싸들고 외할머니를 찾아오곤 했다. 그 사람 말고도 몇 사람 더 있는데, 작은 식이, 엄바우,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그 작은 식이라고 부르던 분이 나를 업고 놀다 떨어뜨려 내 이마엔 작은 상처가 있다.

오래된 기억들이 떠 있는
하늘을 만져 봅니다
뭉클, 가슴 환하게 만져지는 거기

외할머니는 나를 무릎에 눕히시곤
끝도 없는 이야기를 풀어내십니다
호랑이가 서너 고개를 넘을 때쯤이면
나는 꿈속으로 들어가 
이야기 속을 마구 뛰어다니고
꿈벅꿈벅 졸린 눈을 하고 
호롱불이 나 대신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이야기 속을 정신없이 뛰어 다녔습니다
오래, 아주 오래,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세월도 만나고
누더기 옷을 걸친 공주도 되었습니다
떡을 팔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
떡함지를 이고 내가 떡을 팔러 다녔습니다
외할머니 무릎이 아프다는 걸 잊고,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희미하다고 느껴져
깜빡, 이야기 속을 뛰어나왔을 때
외할머니는 고운 베개를 받쳐 주시고는 
멀리 아주 멀리 떠난 뒤였습니다

- 〈산을 오르며〉 전문 -

상사화 꽃이 필 때면 외할머니 생각이 더욱 난다. 이 맘 때였으리라. 미용기술을 배운 친척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오던 날이었다. 외할머니는 여름이라 덥다고 내 긴 머리를 잘라달라고 그 아줌마한테 부탁을 했다. 마루에서 놀던 나는 생각 없이 머리를 맡겼고, 자르고 나서 달라진 모습이 싫었었나 보다. 뒷마당으로 가서는 감나무 밑에 분홍빛으로 예쁘게 피어있는 상사화 대궁을 뚝뚝 꺾어 버렸다. 그 예쁜 꽃을.
해마다 상사화는 피었고, 그 상사화에게 미안함 마음이 들었음은 물론이다. 언젠가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면, 상사화를 심어놓고 외할머니를 보듯 그렇게 바라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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