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숨결이 살아있는 삼년산성아래 마음 착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살고 있는 마을
신라의 숨결이 살아있는 삼년산성아래 마음 착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살고 있는 마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7.21 09:29
  • 호수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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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시민기자

우리의 산, 들, 실개천까지도 우리 조상들이 정겹게 불러주던 아름다운 이름이 있습니다. 올해 시작하는 마을탐방을 통해 우리마을 지명에 얽혀 있는 숨어 있는 전설과 선인들의 애환과 발자취를 살펴보고 현재를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공업화, 현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젊은이들의 탈농, 그리고 직장을 찾아 이농하면서 마을의 현실은 고령의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어 지탱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마을소멸이라는 우울한 미래를 점치기도 하지만 조상이 남긴 마을에는 여전히 공동체가 살아있습니다. 주민의 삶의 터전인 마을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하며 마을탐방 연재를 시작합니다.<편집자 주>

성주리 마을 전경. 동쪽으로 오정산 진달래가 피고, 서쪽으로 마루들이 펼쳐있고, 남쪽으로 솔밭고개와 진등고개 있어 사시사철 포근한 마을.
성주리 마을 전경. 동쪽으로 오정산 진달래가 피고, 서쪽으로 마루들이 펼쳐있고, 남쪽으로 솔밭고개와 진등고개 있어 사시사철 포근한 마을.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타기도 했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가제를 지내기도 했던 수령 250년 된 마을 수호 팽나무이다.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타기도 했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가제를 지내기도 했던 수령 250년 된 마을 수호 팽나무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 노래가 잘 어울리는 마을, 오늘은 보은읍 동쪽2km 지점에 위치한 성주리(城舟里)를 찾아가는 날이다. 
성주리는 성저리, 주교리, 배다리, 방천안 등 자연마을을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는 마을이다. 불볕더위가 몇일 동안 기승을 부리더니 오늘아침은 한풀 꺾인 듯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간단한 필기구를 챙기고 마을을 향해 가는 필자의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한결 가볍다. 
성주리는 필자에게 있어 고향 같은 마을이다. 뱃들 모퉁이(지금의 군청 입구로 이평 사람들은 뱀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뱀골이라 불렀다.)를 돌아 육모장을 지나 삼년산성아래 자리하고 있는 성주리는 봄이 되면 동쪽으로 오정산진달래가 아름답게 피어나고, 서쪽으로 마루들, 동안이들, 학림들이 넓게 펼쳐있어, 계절의 변화를 빠르게 알 수 있다. 남쪽으로 솔밭고개와 진등 고개가 있어 사시사철 포근한 마을이 성주리이다. 

디딜방앗간 자리.
디딜방앗간 자리.
성저리(城底里)에서 배다리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청룡이 나왔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굴이 있는 청룡고개 가는길.
성저리(城底里)에서 배다리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청룡이 나왔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굴이 있는 청룡고개 가는길.

#마을의 안녕(安寧)과 풍년(豊年)을 기원하기 위해 검은 바위에 가제(街祭)를 지내기도 했던 마을
17살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았어, 참 많은 일이 있었지 황하기(95세)어르신이 필자를 보시더니 마을 변천사를 이야기 해주신다. 한참을 듣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심경남(80세) 어르신이 예전에 성저리(城底里)에서 배다리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에 청룡이 나왔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굴이 있었어, 굴 가기 전에 샘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동고사(洞告祀)를 지내기전 몸과 마음을 씻고 검은 바위에서 고사(告祀)를 지내곤 했지, "아! 검은 바위가 지금도 있나요?" 하고 필자가 여쭈어 보니 예전에 마을 앞 농지정리 할 때 땅에 묻었는데, 다시 꺼내서 학교 앞에 놓았지 옆에 있던 어르신께서 바위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아! 그럼 지금 학교 앞에 있는 바위가 검은 바위로군요" 그렇지 그 바위는 삼년산성 서문이 굴러 내려왔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바위야. "그렇군요" 어린 시절 친구들과 바위위에서 놀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엄청 크고 넓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성저리(城底里) 마을회관을 나와 배다리로 가기 전 검은 바위를 살펴보는데,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 있는 커다란 바위가 아닌 조금 큰 바위로 보인다. 아마도 눈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크기의 차이가 나는가 보다. 그리고 필자의 기억에 바위 위에는 동물발자국이 몇 개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검은 바위를 살펴보고 배다리를 향에 발걸음을 옮겼다.  

굴 가기 전에 샘. 이곳에서 동고사(洞告祀)를 지내기전 몸과 마음을 씻었다고 한다.
굴 가기 전에 샘. 이곳에서 동고사(洞告祀)를 지내기전 몸과 마음을 씻었다고 한다.
고사(告祀)를 지내곤 했던 검은 바위. 예전에 마을 앞 농지정리 할 때 땅에 묻었는데, 다시 꺼내서 학교 앞에 놓여 있다.
고사(告祀)를 지내곤 했던 검은 바위. 예전에 마을 앞 농지정리 할 때 땅에 묻었는데, 다시 꺼내서 학교 앞에 놓여 있다.

#성주리는 80청춘 90노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80대 어르신이 트랙터를 운전하며 농사일을 하는 장수마을 
배다리는 마을역사와 함께한 팽나무가 한 구루 자리하고 있다. 마을의 자랑거리이기도한 팽나무는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었고, 수령 250년, 수고 15m, 둘레 2.4m에 달하는 나무이다. 이 보호수는 배다리 마을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예전에는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마을청년들이 그네를 띄기도 했던 나무이다. 나무아래에 돌탑이 있어 정월 초하루 날 또는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빌 때는 새끼줄을 치고 객귀 밥 과 여비를 놓고, 가제(街祭)를 지내기도 했던 마을수호 나무이다. 배다리 회관에서 만난 어르신이 가리켜준 대로 마을중앙에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옛 디딜방아간 자리가 나타난다. 60년대 까지만 해도 배다리는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 좋은 두레박우물이 있었다. 마을 위 우물은 예전 깊이그대로 있고 지금도 풍부한 수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건물이 있어 관리는 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오정산(烏頂山)에서 내려오는 성주리 우물은 맛이 달달하고 깨끗해 잘 관리하고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을 하며 청룡고개로 발걸음을 돌렸다.  
청룡고개(靑龍峴)는 먼 옛날 청룡이 굴에서 나와 승천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고개로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밤에 고개를 넘다 보면 모래를 던지는 짐승이 있어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전설이 있는 고개이다. 당시 아이들은 청룡고개를 넘을 때는 삼삼오오 여러 명이 모여 함께 고개를 넘기도 했다. 하지만 굴을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숲이 우거져 옛길을 찾을 수 없었다. 마을 옆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작은 언덕을 올라가니 50년 전 옛 모습 그대로이다. 당시 언덕에는 큰 나무가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잘려나간 둥치만 옛 추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배다리아이들은 이곳에서 술래잡기, 활쏘기 등 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의 장소이다. 한참을 서서 옛 추억을 생각하고 있으니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친구야 잘 있었니?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청룡고개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땀방울을 식혀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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