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의 정다운 벗, 행복 배달부에서 이젠 평범한 이웃 주민으로
군민의 정다운 벗, 행복 배달부에서 이젠 평범한 이웃 주민으로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2.07.14 10:25
  • 호수 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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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구 집배원인생 40년 마무리
우체국 집배원으로 40년 인생을 살아온 이창구씨. 퇴임후 평범한 일상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평생직장이란 말이 없어지는 시대다.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 경우 비싼 학원 수강료를 내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도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더 나은 곳을 찾는 시대다.
반면 천직이란 말이 있다. 한 번 들어가면 직장이 폐업 등 그 직장을 계속 나갈 수 없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정년까지 그 직장에서 마무리 하며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다.
지난 6월 30일자로 보은우체국을 퇴임한 우편집배원 이창구(62, 보은 이평)씨에게 우편집배원은 천직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새벽같이 출근해 그날 우체국에 쌓여있는 배달해야할 우편물을 이동경로에 따라 분류했다. 우편으로 배달하는 조간신문도 보급소에서 가져다가 분류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우체국으로 나가기 전 마주치는 아파트의 깨끗한 환경을 위해 쓰레기를 줍고 청소하는 것도 그가 자처한 몫이었다.
40년 동안 집배 일을 한 이창구씨의 퇴직을 서운해 하는 주민들의 제보로 이창구씨를 만났다.
그의 일성은 "사람들은 시원섭섭할 거다 했는데 저는 하나도 안 서운해요 우편배달부로 일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했어요.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어요. 엄청 편해요"다.
매일 나가는 곳이 있었고 일을 하며 보내다가 퇴직으로 인해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것에 대한 상실감 그리고 일할 거리가 없어지면서 생기는 무료함, 그것이 무기력으로 이어지고 가벼운 우울감도 느낀다는데 이창구씨에게서는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퇴임을 앞두고 배달구역을 돌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하는 그에게 주민들은 "감사했다 덕분에 따뜻한 정을 많이 느꼈다"고 인사했다. 그의 미소가 참 맑게 다가왔다.
이창구씨의 우편집배원 43년 인생 속으로 들어가본다.
밤 고을인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이창구씨가 보은으로 온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다. 우체국에 다녔던 아버지가 보은으로 발령이 나서 속리산 사내리에 정착했고 그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이창구씨가 우편 집배일을 시작한 것은 1979년 그의 나이 18살 무렵이다.

#첫 배달처는 문장대 구간
지금과 같은 우편배달 시스템 아니고 또 핸드폰 전화나 문자나 카톡 등 서로에게 주고 받을 알림이나 정보 등을 디지털 기기로 소화하는 요즘이 아닌 과거에는 우편배달부의 가방안에는 모두 편지나 엽서, 그리고 전보로 가득 찼다. 하루에도 각처에서 오는 우편물을 가득 담은 우편 가방을 매고 그가 향하는 곳은 문장대 구간이었다. 현재와 같은 집단시설지구가 정비되기 전이라 법주사 가는길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사무실에서부터 각종 식당, 여관, 기념품 가게와 등산로 구간의 태평, 세심정, 용바위골. 할딱고개, 냉천골, 문장대, 신선대, 금강골, 비로산장까지 9개 휴게소까지 배달구역이 엄청 커서 배달해야할 우편물도 상당했다. 우편배달을 위해 매일 등산을 감행했다. 또 도급집배 구역인 삼가리, 도화리, 만수리, 구병리는 페달을 밟아야만 굴러가는 자전거로 배달을 했는데 하루에도 4, 5차례 자전거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겨울철 눈이 쌓여서 자전거 통행이 어려울 때면 갈목리 고개에 자전거를 두고 걸어갔고 삼가저수지가 얼면 가로질러 가기 위해 저수지 위를 걸어갔는데 가끔 쫙 하는 소리가 나면 금방 깨지는 줄 알고 겁을 먹고 참 사연이 많은 배달길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넘어져 삼가저수지 변으로 고꾸라져 있는 사람을 살려낸 일도 있었다. 1980년대 어느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삼가저수지 주변 눈쌓인 길을 걷는데 여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니 엄마가 넘어져 쓰러져 있었다. 여자 아이 혼자 엄마를 부축일 힘이 없으니 소리내서 살려달라고 울기만 했었던 것. 다행히 이창구씨 일행에게 발견돼 엄마를 살려냈다. 하마터면 목숨까지도 위태로울 뻔한 사고에서 사람을 구한 소식은 당시 지방일간지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었다고 했다. 좋은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장판 밑에 있던 곰팡이 핀 돈다발 그 덕에 신뢰 쌓여
두메산골은 첩첩산중으로 외부로 나가는 것도 여의치 않은 곳인데 교통오지일 뿐만 아니라 정보낙후지역이란 뜻도 내포돼 있을 듯싶다. 촌 노인은 예금을 할 줄도 모르고 돈이 생기면 남들이 모르는 곳에 잘 두고 1년내내 생활비로 썼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자기들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 남한테 얘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은 그 사람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예금조차 하지 않으니 공개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던 중 한 어르신이 "내가 돈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나"하고 상의하면서 장판을 들춰보였는데 오랫동안 장판 속에 있어서 곰팡이가 핀 두둑한 지폐다발이 있었다. 이창구씨는 어르신과 함께 돈을 센 후 이자율도 높고 또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예금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 드리고 예금을 해드렸는데 당시 이자율이 높아서 어르신이 만족해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만족해 하니 그 어르신이 스스로 이웃들에게 집에 돈 두지 말고 예금하라고 알아서 홍보해줬고 이렇게 쌓인 신뢰감으로 어르신들은 돈을 주며 예금을 해달라고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뿐이 아니다. 농약, 씨갑씨는 물론 세탁세제나 라면, 국수, 음료수와 같은 생활용품은 우편배달부에게 주문하는 구입품목의 인기 품목이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을 오가는 우편배달부는 우편배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활민원 해결사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우편배달, 돈을 받고 여행을 다니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사시사철 눈이오나 비가 오나 온몸으로 기상상태를 받아들이며 배달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창구씨는 "놀러다니기 위해서 돈을 쓰잖아요. 하지만 우편배달 일은 돈을 받고 놀러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구애받지 않고 주민에게 전달할 우편물울 가방에 담아 나오면 계절의 변화도 느끼고 예쁜 꽃도 발견하고 소음에 찌든 귀를 청소하는 맑은 새소리도 듣고 좋아하는 노래도 듣고 참 좋았다"고 말했다.
"배달을 다니면서 보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나를 기다려요. 어르신들과 신뢰가 많이 쌓이니까 뭐 해달라, 뭐 해달라 했고, 외출을 맘대로 하지 못하니까 저에게 의지를 많이 한 것이죠. 그래서 저는 아~ 이분들에게 내가 없으면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속리산에서 일을 시작해 3년간 근무한 후 자릴 옮겨 8년간 근무했던 탄부면 주민들은 지금도 만나면 거기서 떠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언제 또 오는 겨 이렇게 얘기를 하는 주민들도 있을 정도. 우편배달일이 천직이었던 셈.

#부부는 부창부수 효자효부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교통약자인 주민들의 손발이 되는 것을 기꺼이 자임했던 이창구씨 부부는 부창부수 효자효부였다. 1990년도에 보은우체국으로 갔다가 3년 후 다시 속리산으로 옮겼는데 그 이유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서였다. 집이 떠내려간 1980년 수해때 놀라 척추를 다친 이창구씨의 아버지는 혼자서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1급 장애를 앓았다. 하루에도 수없이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자처한 이창구씨가 속리산 근무도 자청했다.
26년간 병석에 누워있어 거동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돌본 이창구씨는 부모뿐만 아니라 자신의 우편구역 어르신들을 돌본 선행군민이었다. 그의 이같은 선행이 알려져 보은군 추천으로 모 재단으로부터 1천만원의 상금도 받는 일도 있었고 현대그룹에서 시행한 효자 상으로 300만원을 받기도 했다. 또 효부로 알려진 부인과 90세 시어머니간 사이도 돈독해 도지사 효부상으로 고부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우편 집배원 이창구씨는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역경에 나오는 자강불식을 자신을 독려하는 사명같이 여기는 문구로 여기며 쉬지 않고 자신을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 일환으로 일기를 쓰고 현업에 있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 11개 신문을 읽으며 시사에 밝은 눈과 경향을 읽어내고 진보와 보수의 균형을 유지하고 한문을 좋아해 독학으로 한문을 습작하고 글씨 쓰는 것도 좋아해 늘 글씨도 쓰는 그다. 그래서 잔칫집의 접수, 청첩장, 부고장을 많이 썼다.
그리고 생활신조로 삼는 것이 역지사지다. 또 나를 더 낮추는 것. 그러다 보면 남과 다툴 일이 없어 동료들에게도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늘 가훈처럼 일러주고 있다.
우편집배 일을 하면서 또 하나 생긴 취미는 사진을 찍는 것이다. 꽃 사진 풍경사진 등 자연풍광은 카메라와 그의 스마트폰에 가득 담겨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직장, 보은우체국으로 향하던 이창구씨는 자유로운 몸이 된 지금 들깨, 고추, 오이를 심은 밭에서 시간을 보낸 경우가 많지만 자신의 정성을 먹으며 쑥쑥 커가는 것을 보며 퇴임 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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