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보릿고개와 찐 보리쌀(1)
(14) 보릿고개와 찐 보리쌀(1)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6.09 09:16
  • 호수 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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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지원받았습니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요즘 트롯의 부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진성'님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담았다는'보릿고개'의 가사이다. 불과 60년 전인 1960년에 평야지대인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태어나 그나마 넉넉한 지방 사람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하물며 같은 시기에 임야가 77%를 차지하는 보은지방의 1만3천107 농가(農家:전체의 79%)에서 살고 있던 8만3천386명(전체인구 10만1천441명)은 매년 돌아오는 5월과 6월 달이 너무도 잔인하고 무서운 시기였다. 대부분 농가에서는 전년도에 벼를 추수한 뒤 방아를 찧어 약50%의 소작료를 주고, 나머지를 보은의 5일장에 내다 팔아 비료 대와 농협으로 부터 빌려 쓴 농사자금을 갚고 나면, 남은 쌀로 보리가 익을 때까지 먹고 살 수가 없었다. 어려운 사정을 극복해 보려고 꼬지 모를 받아먹고, 외지로 품을 팔러 나가는 등 여러가지 방법을 찾아보았고, 그래도 먹을 것이 떨어지면 익지도 않은 푸른 보리를 베어 찐 보리쌀을 만들어 먹었다. 이 시기를 사람들은'보릿고개'라 불렀고, 다른 말로 춘궁기(春窮期), 춘황(春荒)라고도 불렀다. 어린 자식들이 배고파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어린 새끼들을 굶어죽이지 않겠다는 마음에 익지도 않은 보리를 베어 지게에 가득 짊어지고 집으로 달려 오셨고, 어머니는 누르면 익지 않아 하얀 물이 나오는 보리를 털어 큰 가마솥에 넣고 쪄서 도구통(절구통)으로 보리쌀 한말을 만들기 위해서 한 시간 이상을 쿵덕 쿵덕 껍질을 벗겨내는 힘겨운 절구질과 칭이(키)질을 하여 큰맘 먹고 밥을 지어 허기진 어린 자식들 앞에 놓아 주셨다. 어린 자식들은 부모들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와 밥이다'소리 지르며 오랜만에 먹어보는 밥 먹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도 죽음을 피하기 위한 힘든 싸움으로 덜 익은 보리를 베어 먹는 것을 우리의 고귀한 옛날의 양반님들은'청살(靑殺)'이라고 점잖게 표현하셨다. 찐 보리쌀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은 편이다. 덜 익은 보리도 베어 올 형편이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은 몰래 남의 산에 올라가 소나무의 속껍질을 벗기고, 쑥을 캐어 먹으면서 연명하기도 하였다. 이런 생활이 길어지면 송진 등 거친 음식으로 인하여 심한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하여'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들은 먹을 것이 부족하여 소나무 껍질이나 솔잎 뿐 아니라 칡, 쑥, 벌금다지, 독새 풀 등 초근목피로 허기진 배를 채우다 보니 영양분이 부족하여 살가죽이 붓고 누렇게 변하는 부황(浮黃)까지 발생하여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어려운 형편에 아랫녘(경상도 지역)의 배고픈 사람들까지 구걸하러 올라와 인심까지 흉흉하게 만들었다.(▶다음 주 계속)

먹을것이 떨어지면 익지도 않은 보리를 베어 보릿고개를 넘겼다.
먹을것이 떨어지면 익지도 않은 보리를 베어 보릿고개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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