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가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6.0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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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오랜만에 아침 산책길에 나섰다. 정말 오랜만이다. 자식처럼 키우던 애완견 은비가 작년 여름에 죽고, 산책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은비와 함께 걸었던 그 둑방길을 가면 은비가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나갔더니 가뭄에 풀들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냇가에는 물이 줄어 있었고, 거기에 어떤 검은 새가 날아와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마치 해녀처럼 머리부터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더니, 한참동안 물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아마 물고기를 잡고 있을 것이다. 
갓 모내기를 한 마른 논에 어떤 아저씨가 지하수를 끌어올려 물을 대고 있고, 그 논에서 어릴 적 맡았던 흙냄새 같기도 하고 물비린내 같기도 한 정겨운 냄새가 났다.

애처가로 소문난 김씨가
상처한지 한 달도 안 돼 새장가 가던 날 
하늘이 화를 냈다

오랜 가뭄이다
냇가는 이미 물이 마른지 오래고
밑바닥은 쩍쩍 갈라져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샌가
들풀들이 밤의 여자처럼 달라붙어
냇가는 이미 들풀들만 무성할 뿐이다

물이 떠난 자리에
재빨리 들풀을 키울 수 있는
발 빠른 김씨가 거기 있었다
 
 - 「가뭄」 전문 - 

위의 시를 쓴 오래 전 어느 해에도 가뭄에 물이 마르고 풀이 말라가고 있었다. 그때엔 아침마다 산책을 했었고, 그 어느 아침 시상이 떠올라 '가뭄'이란 시를 썼다. 이 시는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준 시이기도 하다. 
집 앞에 작은 텃밭을 가꾸고 있다. 호박이랑 고추 몇 포기, 상추 등을 심어놓았다. 그런데 가뭄이라 잘 크지를 않는다. 퇴근하면 물을 주지만 어찌 비가 내리는 것만 하겠는가. 밭에 심은 것들은 거의 타들어가는 지경이다. 고추도 그렇고 고구마 심은 것도 그렇다. 마늘 심어 놓은 것은 잎이 모두 타버렸다. 마늘 씨 값도 안 나올 것 같다. 사먹는 게 싸다고 나는 투덜거리지만, 일 좋아하는 남편은 그래도 농사지어 먹는 게 낫다고 한다. 참깨도 심는다고 하는 걸 이 가뭄에 씨가 나겠냐고 극구 말렸더니 포기하고 들깨나 심는다고 한다.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어릴 적부터 보고 자라서 안다. 고단하고 돈도 되지 않는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농사짓는 분들의 수고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버지는 자식들은 힘든 농사 짓지 말라며 얼마 되지 않는 논밭을 모두 팔아버렸다. 그런데 외할머니 산소가 있어 팔지 못한 묵은 밭을 우리가 농사짓고 있다. 일하기 좋아하는 남편이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 밭에서 힘들게 일했던 아버지를 만나고 엄마도 만난다. 산 속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 거기에 있다. 새참을 가져가면 그 옹달샘에서 물을 떠먹곤 했다. 
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어야 짓는 거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얼른 이 가뭄이 끝나고 단비가 내리길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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