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할아버지와 손자의 못줄이야기 1
(12)할아버지와 손자의 못줄이야기 1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5.26 09:47
  • 호수 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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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모를 심는데 사용하는'못줄'. 요즘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나일론 줄로 바뀌었다.
줄모를 심는데 사용하는'못줄'. 요즘은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나일론 줄로 바뀌었다.

5월 하순'동아니 뜰'의 모심는 논둑에서 11살의 귀여운 손자 철수가 앳되면서도 앙칼진 목소리로 건너편 논둑에서 곰방대를 물고 있는 할아버지를 향하여 겁도 없이'어-이'하고 소리를 지른다. 웬일인지 할아버지도 노여운 기색이 전혀 없이 텁텁한 목소리로'어이'하면서 못 줄을 넘기신다. 손자 곁에서 모를 심고 있는 동네 아저씨는'얘, 너 할아버지하고 맘먹는다. 겁 안나 ?'하고 놀리시고, 손자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생글거리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1960년대 초 보은지방의 모심기(모내기) 풍경이다. 지금은 지구의 온난화 현상과 1980년대부터 개발된 이앙기가 대형화되어 공장에서 묘(苗)를 사오거나, 육묘상자에 볍씨를 뿌려 비닐하우스 안에서 냉해와 서리를 피해 10일정도 키워 본답에 이앙을 하므로 5월 하순이면 모내기가 끝나지만, 예전에는 이모작으로 심는 보리나 밀을 수확하고 벼를 심는 경우에는 하지(6월23일)까지도 모심기를 하였다. 모내기는 고려시대부터 강원도 지방에서 일부 실시하였으나, 수리시설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심한 가뭄이 들면 일 년 농사를 망치게 되어  금지시키고, 논에 직접 씨를 뿌리는 직파 법을 이용하였다. 그러다가 조선 숙종 때(약350년 전)에 모판에서 모를 키워 본답에 심는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정착되었다. 이앙 법은 1960년대까지도 손으로 모를 심을 때에는 모판에서 적당한 포기로 모를 쪄서(뽑아) 짚으로 묶어 모춤을 만들었고, 모춤을 지게나 구루마로 본답으로 옮겨 모심기를 하였는데, 작은 논배미에서는 대부분 못줄을 사용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심는'막모, 벌모'를 심었고, 큰 논에는 못줄을 사용하여'줄모'를 심었다. 줄모는 통상 8-13명의 모내기꾼이 못줄의 눈에 맞추어 좌 또는 우로 이동하면서 심고 한발 뒤로 물러서는'한줄 모'를 심었고, 지방에 따라서는 모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못줄을 한 번 친 상태에서 두 줄을 심는'두 줄모 심기'를 하기도 하였다. 이 모내기 법은 일제강점기 때에 처음으로 보급되었으며, 바람이 잘 통하고 햇볕이 많이 들어와 생육에 좋았고, 논매기에도 편리하여 대부분 선호하였다. 줄모를 심는데 사용하는'못줄'은 통상 말레이시아 삼 또는 종려나무 껍질처럼 가볍고 단단한 재료를 사용해서 만들다가 점차 쉽게 구할 수 있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나일론 줄로 바뀌었다. 못줄의 규격은 모심기 후에 포기가 벌어지는데 영향을 주는 각 지방의 기후와 토질, 모심는 시기와 품종 등에 따라 통상 30-40m의 줄에 15cm에서 22㎝의 간격으로 눈에 잘 띠는 색깔의 헝겊'줄눈'을 달았는데, 보은은 산간지역이라 추워서 포기가 많이 늘어나지 않는 관계로  대부분 15cm-18cm 간격의 좁은 줄눈을 사용하였다. 모심기 작업은 여러 사람의 협동작업이 필요한 관계로 옛날에는'두레'로 심었으나, 기계화로 인해 이같은 모습은 점차 사라져 지금은 볼 수 없다.

(▶다음호에 계속)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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