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가방
엄마의 가방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5.12 10:02
  • 호수 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니스트 김 윤 이
(보나팜영농조합법인 대표, 대원리)

5월은 농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모를 심는 달이다. 모내기를 위해 논둑을 만들고, 논에 물을 대고, 로터리를 치고, 써레질을 해서 바닥을 평평하게 하는 등 할 일이 많다. 이앙기로 모를 심고 모 때우기까지 하면 모심기를 다 하고 한시름 놓게 된다. 그뿐 아니라 고추와 고구마, 옥수수 등의 작물과 토마토와 상추, 가지 등의 채소들을 심고, 봄나물을 뜯느라 바쁜 5월이다. 
5월은 또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족과 관계된 기념일이 많다. 가족들이 서로가 서로를 챙겨주고 축하하는 달이다. 그래서인지 5월은 바쁘면서도 마음 따뜻한 달이다.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니 감사하고, 자식들 위해 온몸 바쳐 애쓴 부모님이 살아 계셔서 감사한 달이다.
작년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혼자서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며 살고 계시다. 때로는 자식들 소식에 웃기도 하고, 근심하기도 하며, 손주들 전화 한 통에 환하게 웃으며 대견해 하기도 한다. 텃밭에 씨를 뿌리고, 풀을 매고, 일주일에 몇 시간은 노인 일자리에 나가 무료한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자식 셋을 차례로 서울로 보내 공부를 시켰던 엄마는 용감하고 알뜰하고 헌신적이었다. 엄마 하면 엄마의 가방이 생각난다. 요즘이야 택배가 잘 되어 전국 어느 곳이든 쌀도 보내고 필요한 물품을 보내기도 하고, 여차하면 인터넷 쇼핑몰에서 시켜서 직접 배송도 하지만 예전엔 객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뭐라도 보내려면 보따리와 가방을 이고지고 버스 타고 직접 가져가야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오빠와 함께 서울에서 자취하던 나는 쌀도, 김치도, 반찬거리도 엄마가 직접 가져다 주시거나 가끔 시골에 내려갔다가 우리가 가져오기도 했다. 아직도 생생한 기억은 버스에 김치통을 가지고 탔는데 어찌나 그 냄새가 심하던지 사람들 보기에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다. 짐칸에 실었으면 덜했을 텐데 버스 안에 가지고 타서 냄새가 더 심했다. 그런데 나보다는 엄마가 훨씬 더 자주 서울에 왔으니 엄마는 그런 고역을 여러 번 겪었을 터이다. 그런데도 한 번도 불편하다, 힘들다, 창피하다 불평하지 않으셨다. 고속버스에서 내리면 택시라도 타면 좋으련만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또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서 자식들 자취방에 왔던 엄마가 요즘 자주 생각이 난다. 특히 내가 대학 때 메고 다니다가 버리려고 구석에 놨던 배낭을 꿰매서 반찬거리를 싸서 갖다 주던 엄마의 가방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보자기로 싼 보따리나 거의 찢어질 듯한 종이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영상 필름처럼 펼쳐진다. 
나도 어느새 엄마가 되고, 장성한 딸이 학업을 위해 서울에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 살게 되었다. 집에서 음식을 자주 해먹지는 못하지만 딸의 건강을 위해 이것저것 싸서 택배로 보내기도 하고, 일이 있어 서울에 가게 되면 나도 예전의 엄마처럼 이것저것 싸서 캐리어나 배낭에 넣어 챙겨 간다. 다 먹지 못해 냉장고에서 썩어나갈 것이 분명한데도 자꾸 더 넣게 된다. 
엄마가 되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것 같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무거운 가방에 넣고 또 넣으면서, 딸의 집에 가서 더러워진 주방 타일과 화장실 등을 청소하면서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생각한다. 엄마의 가방엔 사랑이 그득했다. 자식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있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어서, 나도 딸이 처음이어서 말과 행동으로 실수하고, 미안해하고, 또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을 다 표현하지 못했던 수많은 날들이 과거의 저편에 있다. 그래도 이제는 엄마에게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꼭 5월이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더 자주 연락하고. 더 자주 찾아 뵙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철쭉의 꽃잎이 하나둘씩 시들어가고, 앵두와 매실의 알맹이가 몽글몽글 영글어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간다. 똑같은 시간일 텐데 갈수록 더 빠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일까? 시간을 붙잡지 못할 바엔 지금 이 순간 내 가족에게, 가까운 이웃과 지인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그런 내가 모여 우리가 되고, 우리가 모여 따뜻한 온정이 넘치는 우리 사회, 우리 나라가 되길 소망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