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5.04 04:57
  • 호수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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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나에겐 언니가 없다. 
어렸을 적엔 언니 이야기를 하는 애들이, 언니 옷을 물려받아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애들이 몹시 부러웠다. 그 당시엔 9살이나 차이가 나는 오빠 한 분과 3명의 남동생이 있어서,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큰 옷을 사주곤 했다. 
몇 년을 넉넉히 입으라는 뜻일 게다. 중학생이 되어서야 여동생이 태어났지만 옷을 나누어 입기엔 너무 먼 나이였다.
그런 큰 옷을 입을 때면 오빠가 봐도 보기에 안 좋았던지, 긴 치마를 접어 넣어서 짧고 귀여운 치마로 손수 바느질 해주곤 했다. 
오빠가 봐도 모양이 없었던 모양이다. 자상한 오빠가 언니 몫을 대신해 주긴 했지만, 그래도 언니가 부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무슨 고집이었는지 내 오빠 말고는 누구에게도 오빠라고 부르지 않은 것처럼 친척 언니들에게도 언니라고 부른 기억이 없다. 
나이든 지금 약국에 오는 친척 언니들에게 언니, 언니, 살갑게 불러 준다. 대게는 칠십이 넘은, 팔십이 넘은 언니들이다. 내가 나이를 먹었으니 언니들도 언니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노인네들이다. 
누가 보면 우습겠지만 나에겐 어렸을 때 불러보지 못한 '언니!'를 자꾸 불러보고 싶은 것이다.
나에겐 딸이 둘 있는데 얼마나 성격이 다른지 자주 다투곤 한다. 큰딸은 깔끔하고 정리 정돈을 잘 하는 반면, 작은 딸은 착하긴 한데 정리 정돈을 잘 하지 못한다. 
서울에서 함께 살 때는 힘들어 하더니 따로 살면서 사이가 좋아졌다. 까칠한 큰 딸이 언젠가 동생을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 너도 언니는 언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요즘 내겐 친정 언니 같은 짠한 언니가 있다. 키는 커서 구부정하고, 녹내장이라 눈도 잘 안보이고, 걸음걸이도 불편해 유모차에 의지해서 걷는.
그 선생님은 우리나라 아동 문학의 대가이시다. 
한국일보 시상식장에서 만나고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니 10년이 넘었다. 
딱 두 번을 만났는데도 늘 통화를 해서 그런지 가까이 있는 것만 같다. 아파트 10층에 사는 선생님은 엘리베이터가 수리중이라 몇 달째 집안에서만 갇혀 산다. 눈이 어둡고 걸음도 서툴러 10층 계단을 오르내리기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선생님이 안쓰러워 표고버섯 딴 거랑 열무김치랑 딸애한테 보내는 택배랑 똑 같이 나누어 택배를 쌌다.
거기에 집 앞에 개복숭아 꽃이 예쁘기에 두 가지 꺾어 넣어 보냈더니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다. 
개복숭아 꽃을 좋아한다면서 큰 가지는 자기고 작은 가지는 나라고 한다. 
그 선생님은 내가 꼭 친정 동생 같다고 한다. 나도 어느 날 부턴가 짠한 친정언니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몸이 성치 않으니 더 짠한 생각이 든다. 
약국에 일을 하면서 짠한 언니들을 많이 본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언니였을 것이다. 일을 많이 해서 손가락이 구부러진 언니, 오랜 농사일로 무릎이 성치 않은 언니, 팔을 많이 써서 팔 수술을 한 언니, 시골이라 평생 농사일로 몸이 성치 않은 언니들이다. 
농사일 하면서 시집살이 하면서 배도 곯아 가면서 자식을 여섯이나 일곱 명을 낳은 장한 언니들이다. 
그 자식들을 힘든 줄 모르고 공부시킨, 이 사회의 일꾼으로 만든, 이제는 병들고 나약한 짠한 언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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