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동안이 뜰의 소(牛) 이야기
(7)동안이 뜰의 소(牛) 이야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4.21 09:47
  • 호수 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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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농부들의 힘이 되어주고, 재산이 되어주고, 한 식구가 되어 주었던 동안이 뜰의 소들의 모습이다.
삼국시대부터 농부들의 힘이 되어주고, 재산이 되어주고, 한 식구가 되어 주었던 동안이 뜰의 소들의 모습이다.

보청천 물이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보은읍 중동리와 풍취리에 만들어 놓은 '동안이 뜰'은 산골지방인 보은에서는 꽤나 넓은 보은분지의 중심 뜰이다. 지금은 뜰 가운데 듬성듬성 10여 곳에 소를 키우는 축사가 들어와서 수십 마리에서 수백 마리가 우리 안에 갇혀, 살이 찌워져 고기가 될 날을 기다리고 있지만, 197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소는 동안이 뜰 농가의 중요한 식구이자 재산목록 제1호인 보물이었다. 논농사가 전부인 동안이 뜰 농사에서 소는 새삼 더 말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일꾼으로 주인집 일은 물론, 틈틈이 소가 없는 다른 집의 일도 해 주어 가난한 농가의 일손을 덜어 주고, 상일꾼 이틀 치의 품삯을 받아와 주인 집 살림에 보태주는 중요한 식구 중의 하나였다. 그러다보니 소를 살 돈이 없는 가난한 농가에서는 암송아지를 빌려와 먹이고 길러 농사일을 해 가면서 새끼를 낳으면 대가로 송아지를 받아 소를 장만하거나, 소를 팔아서 이익을 나누는 병작소를 키우면서 부자와 가난한 집이 협조하여 함께 농사를 짓고 부를 키워가는 중요한 대상이었다. 반면에 농가에서는 보답으로 매일 가마솥에 먹음직스러운 소죽을 쑤어 대접하였고, 보청천 갱변(천변)에는 개구쟁이들이 소를 몰고나와 소에게 좋은 풀을 먹이기 위하여 경쟁을 하면서도 개구리도 잡아 구어 먹고, 소를 타고 달리기도하는 전원의 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부모님들이 나는 배우지 못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지만, 내 자식은 이 고생 안 시키겠다고 대학에 보낸 자식의 등록금 마련 또한 소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으로 부르기도 하였지만 소 덕분에 많은 인재를 키워 놓기도 하였다. 소를 목돈과 바꾸는 우시장(牛市場)은 큰 돈뭉치가 넘나드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한때 동안이에 사셨던 최병학(88)님은 "보은 장날이면 죽전에 있던 우시장은 언제나 돈다발을 손에 움켜쥐고 흔들며 흥정을 매듭지으려는 거간꾼의 큰 소리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푸짐하게 국밥이 끓고 있는 큰 가마솥 옆에서 막걸리를 들이키며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란은 인정이 넘치고 풍요로운 한 장면이었지."하시며 옛날을 회상하신다. 이렇듯 삼국시대부터 1천500년 이상을 농부들의 힘이 되어주고, 재산이 되어주고, 한 식구가 되어 주었던 동안이 뜰의 소들은 이제야, 쟁기를 끌어 농사를 지어주고, 구루마를 끌어 짐을 운반해 주고, 새끼를 낳아 목돈을 만들어 주고, 끝내는 자신의 고기를 내어주던 한우의 삶에서 벗어나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편히 살고 있지만, 조상 소들의 영화를 꿈속에서라도 맛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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