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며
꽃으로 피어나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4.14 09:54
  • 호수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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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윤 이
(보나팜영농조합법인 대표, 대원리)

계절 중에 가장 화사하고 빛나는 계절, 사람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는 계절은 봄일 것이다. 춥고 긴 겨울 끝에 봄이 오기 때문에 더 반가운 계절이다. 심지도 않은 쑥과 달래, 고들빼기, 민들레가 보슬보슬해진 땅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산수유, 매화, 목련, 벚꽃, 개나리들이 봄이라고 환하게 웃는다. 
T. S. 엘리어트는 그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황무지' 시에서의 의미와는 다르지만 문자 그대로 4월은 내게 잔인한 달이다. 작년 이맘 즈음 벚꽃 흩날릴 때 아버지가 갑자기 심정지 되어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전날까지 아무 일 없이 교회에 가서 설교까지 하셨는데 밭에서 일하시다가 토하시고 난 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119 구급차 안에서 돌아가셨다. 엄마도, 우리도 아버지가 그리 황망히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벚꽃이 흩날리면 눈물이 난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먹거나, 아버지와 함께 갔던 곳에 가면 아버지가 생각나 마음이 울컥해진다. 아버지에게 효도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죄송할 뿐이다. 더 자주 연락할 걸, 더 자주 찾아뵐 걸 후회해봤자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서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잘하라고 하건만,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걸 나는 몰랐다.
돌이켜보니 4월은 나에게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 세월호의 유가족들, 또 여러 이별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리라. 
특별히 오늘은 진도 바다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으면서 목숨을 잃은 304명의 사망실종자들과 남은 가족들을 기억해 본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셔도 이렇게 슬프고 미안한 마음인데 세월호 유가족들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딸들을 잃은 그들의 아픔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만큼 배상받았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자기 자녀의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랴. 
8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이었다. 배가 침몰된 이유는 차치하고 충분히 구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선장과 선원들은 450여 명의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고, 본인들은 선원용 탈출구를 통해 빠져나왔다. 또 해경들은 어떠했는가. 아이들과 승객들은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자 이제 살았구나 생각했지, 꿈에도 자신들이 죽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조타실까지 들어갔던 해경은 승객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또 마지막 구조의 시간에도 해경들이, 구출을 기다리던 아이들이 많이 몰려 있는 창문을 깨고 빨리 바다에 뛰어내리라고 소리만 쳤어도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304명의 사망실종자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해경들의 소극적인 구출작전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근방에서 조업을 하던 어선들이 더 적극적으로 승객들과 단원고 학생들을 구출했다고 한다. 또 정부는 뒷북 대처로 촛불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원인 규명은커녕 시원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른들의 말을 순순히 따른 학생들만 꿈을 펼치지 못한 채 하늘의 별이 되고 만 것이다. 세월호와 함께 진실도 가라앉은 것인가? 평생을 가슴 속에 아들딸을 품고 살아가는 그 부모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손가락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에 진실 규명은 이루어져야 한다. 
보은의 제방길에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제 꽃을 다 피우지 못한 채 사라져간 아이들을 기억한다. 지금 그들이 살아 있다면 스물 여섯, 얼마나 화사하게 제 이름의 꽃을 피웠겠는가. 꽃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벚꽃길을 걸으며 아프고 힘들었던 이웃들을 기억하리라. 어쩌면 그들의 아픔으로 맺힌 홀씨들이 또 어딘가로 날아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진실과 정의의 꽃이 활짝 피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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