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소주(燒酒) 이야기(1)
(5)소주(燒酒) 이야기(1)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4.07 10:10
  • 호수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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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사람들은 요즈음'코로나 19'질병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시기에 어떤 술을 마시나 하고 보은읍 이평리의 한 식당을 찾았다.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로 많은 식당들이 손님들이 없어 굉장히 고통 받고 있는데도 이 집은 빈자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식탁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돼지고기를 술안주로 소주를 마시며 그런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연신 친구들에게'시원'소주 술잔을 권하는 70대 후반의 어르신께 여쭈어 보았다.'시원'소주를 좋아 하시나 봐요 ? 하니,'충청도 사람이 충청도 술 마셔야죠. 장학금도 내 놓고 하는데. 그리고 오랫동안 시원을 마셔서 그런지 다른 술 마시면 맛이 없어요'하신다. 다른 자리를 둘러보아도'시원'이 대부분 이다. 요즈음 귀농. 귀촌한 분들이 많이 늘어나'참 이슬'을 찾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보은사람들은 시원을 찾고 있고, 어떤 식당에서는'소주 한 병 주세요.'하면 그냥'시원'을 내 오는 곳도 있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즐겨 마시는 소주는 언제부터 우리 술이 되었을까 ?   연세가 있으신 많은 분들이 증류식 소주의 대표격인'안동소주'을 우리 고유의 전통술로 알고 있고, 한때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온 사람 중에는'일본에서는 우리 소주가 아주 고급술로 대접 받고 한 병에 만 원 이상을 한다.'고 일본에서 소주 마시고 온 것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증류식 소주인 안동소주나 현재 우리가 즐겨 마시는 희석식 소주 모두가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가 있는 과거의 산물이다.  1230년대에 페르시아에서 개발한'아라크 증류법'은 유럽으로 들어가'브랜디'와'위스키'를 만들었고, 페르시아를 침략한 몽골은 증류법을 터득하여 말의 젖을 이용하여'아락소주'를 만들었다. 이'아락소주'기술이 몽골의 고려 침략으로 몽골군의 주둔지이던 개성과 안동, 제주에서 점령군에 의하여 노주(露酒), 화주(火酒), 한주(汗酒), 백주(白酒), 기주(氣酒)라고도 불리는 소주가 만들어져 안동소주로 대표되는 증류식 소주가 만들어졌다. 소주는 쌀이 귀한 당시에는 너무도 귀한 술이 되어 부유층이나 마실 수 있는 술이었고, 일반인들에게는 맛보기가 힘든 약주(藥酒)였다.
'시원'과 같은 희석식 소주 또한 1899년 일본에서 개발하여 조선으로 들여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증류식 소주를 대체하며, 대중 사이에 서서히 퍼져나가자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한 통치 비용을 충당하고자 소주 등 술에 대한 간접세금을 물리는 법을 제정하여 주세를 걷어 들이는 한편, 1910년부터는 고구마로 직접 주정을 생산 판매하여 조선총독부의 주된 자금원이 되었다.(다음 주에 계속 됩니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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