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내 동생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4.07 09:55
  • 호수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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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생각하면 늘 먹먹한 동생이 있다. 네 명의 동생 중에서 내 바로 밑에 있는 동생은 나에겐 늘 아픈 손가락이다. 어릴 적엔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누나 별 일 없어?" 요즘엔 자주 전화하는 살가운 동생이다. 
어렵던 시절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아픈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던 착한 동생이다. 나이가 어려 나뭇지게를 질질 끌며 나무를 해오던 마음 아픈 동생이다. 
일본에 징용 가서 한국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본 관리를 흠뻑 두드려 패서, 일본 경찰에게 죽을 만큼 고문을 당해서, 늘 몸이 아팠던 아버지가 안쓰러워 동생은 일찌감치 아버지 농사일을 도왔다. 
육 남매 중 오직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불쌍한 동생이기도 하다. 농사일은 돈이 안 되니 그 어린 나이로 탄광에 다니며 월급을 봉투째 뜯지도 않고 아버지 갖다 드렸다는 착한 동생이다. 
오래 전 우리 아들 녀석이 대전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 술을 먹고 지인차를 몰고 가다 신호대기중인 택시를 들이 받은 적이 있다. 그때 회사를 쉬어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 해결해주고 애 너무 혼 내키지 말라고, 한번쯤 실수도 할 수 있는 거라며 나에게 당부를 하던 마음 넓은 동생이다. 
다른 형제들이 못한 효도를 동생이 혼자 감당한 것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쓴 '내 동생'이라는 시가 있다. 이렇게라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 농사일 돕느라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내 동생
낮에는 농사일, 밤에는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캤던 내 동생
아픈 아버지께 효도하려고
목숨과 맞바꾼 월급봉투를 뜯지도 않고
아버지 갖다 드렸다는 내 동생
나무토막 같은 아버지 심심하다고
그 시절 귀한 텔레비전을 사드린 것도
시원하게 보시라고 선풍기를 사드린 것도 내 동생
아버지 돌아가지자 외항선타고 세상구경하고 온 내 동생
대학생 아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는 소리를 듣는 내 동생
지입차 트럭 운전을 하다가
사장에게 성실하게 보여 정식 직원이 되어
지금은 부장이 된 내 동생
시골 오면 나이든 사촌 오빠에게 슬쩍 용돈을 주머니에 넣어주는,
어릴 적 힘든 농사일과 무거운 지게를 져서
키도 못 큰 내 동생

작지만 세상에서 제일 큰
내 동생
                       「내 동생」 전문

봄이다, 쌀이 귀했던 어렵던 시절엔 밥보다 나물을 더 넣어 비벼 먹곤 했다. 봄이면 쌀이 바닥이 나서 보릿고개라는 말이 나오던 때가 있었다. 어느 봄날에 동생과 나물을 캐러갔던 날이 문득 생각난다. 오늘은 내가 먼저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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