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고향 보은
제2의 고향 보은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3.31 09:14
  • 호수 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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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 만 동 조자용민문화연구회 대표, 도화리

보은과 나의 첫 인연은 아주 어린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재수를 하던 나는 입시공부에 전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먼저 고등학교에 입학한 친구들의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행에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는 모두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꽤 사치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더욱이 16세에 불과한 어린놈들이 당시 유행하던 무전여행을 강행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그 용기가 가상하긴 하다. 
무전여행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단 한 푼도 없이 떠날 수는 없는 일. 각자 최소한 5천 원 이상을 만들어 만나기로 했다. 집안 사정이 편치 않기도 했지만, 여행을 간다고 돈을 달라고 하면 선선히 줄 리가 만무했다. 형제들이 많다 보니 집안 구석에 처박혀 있는 스케이트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옳다구나!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스케이트장 옆에 즐비한 중고 운동구거래상에서 3천 원 정도를 거머쥐었다.
어디서 도담삼봉을 주워 들었는지,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차를 타고 처음 도착한 곳이 단양이었다. 강원도나 제주도 같은 곳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어린 마음에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최장거리가 충북이 아니었을까? 자발적으로 간 첫 여행지였기에 도담삼봉은 내 머리 속에 아직도 깊이 각인되어 있다. 
다음 여행지가 바로 속리산이었다. 당시만 해도 속리산은 신혼여행이나 수학여행의 최고 관광코스였다. 보은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문장대까지 오르는 길은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경치는 너무 아름다웠지만 식빵 몇 조각을 들고 오른 속리산에서의 추위와 배고픔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훗날 보은과의 그리도 깊은 인연이 맺어질 줄은 그 때는 꿈도 꾸지 못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을 했다. 아이도 생겼다.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조자용 박사님의 초대를 받았다. 조자용 박사님은 수십 년 간 우리 민화와 도깨비, 장수바위, 삼신사상 등 우리 민문화에 대해 깊이 연구를 해보신 분이었다. 나에게는 진외할아버지가 되신다. 조 박사님은 80년대 중반, 속리산 정2품 소나무 앞에 에밀레박물관을 건설하시고 운영하고 계셨다. 
하지만 90년대에는 박물관 운영보다는 우리 민문화와 민족의 뿌리인 삼신사상을 연구하시며 삼신사 캠프를 운영하시는데 전념하셨다.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개최하시면서 초등학생 이하의 맑은 마음의 아이들을 자녀로 둔 가족들을 특별히 초대하셨다. 나 역시 친척이기도 했지만 어린아이가 있었기에 초대를 받았다. 행사는 도깨비 그림그리기, 밤 줍기, 사물놀이 등 어린이 위주로 꾸며졌다. 속리산과의 인연이 조자용 할아버지 덕분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조 박사님으로부터 지금의 너와집 터를 싼 가격에 얻게 되었다. 땅을 갖게 되자 속리산과 보은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2000년 봄, 초라한 초가집이 흉가처럼 쓰러져 있던 터에 너와집을 지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나를 위로해 줄 곳이 생긴 것이었다. 속리산을 셀 수도 없이 올랐다. 속리산의 정기를 받아 내가 아직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감사하다!
도화리 주위 5개 마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금은 폐교가 된 삼가초등학교 살리기 운동도 했다.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민들의 문화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음악회와 연극 공연 등의 문화 활동도 수십 차례 개최했다. 지역신문 '보은사람들'이 칼럼을 쓸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어 3년여에 걸쳐 거의 40꼭지를 썼다. 이 또한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자란 나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없다. 보은은 어린 시절 여행지로 속리산과의 첫 인연부터 따지면 반세기, 터 받아 집 짓고 살아 온 시간만으로도 어언 20여 년이 넘었다. 나는 나의 제2의 고향 보은과 속리산을 사랑한다! 남은 시간, 조자용 박사님의 유업을 이어 에밀레박물관을 복원하고 보은을 우리 민문화의 전통을 이어가는 상징적인 고장으로 만드는데 일조를 하고자 한다.
그동안 나의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분들에 감사드린다. 혹시 내 글에 상처를 받거나 마음 상한 분들이 있다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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