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것들의 무한한 가치
하찮은 것들의 무한한 가치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3.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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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살아가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것들과 마주한다. 살아 있는 무수한 생명들이 있고, 아무런 온기도 숨결도 없는 무생물도 있다. 존재에 맞는 이름이 있는 것도 있고, 무명으로 머무는 것들도 있다. 산다는 것은 존재하는 어떤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이나 시간 속에서 그 존재의 의미는 명확해진다. 아무런 의미가 없던 것이 어떤 계기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내게는 쓸모없고 가치 없는 것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없어서는 안 되는 값진 물건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넘쳐서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이 어느 곳, 어느 사람들에게는 목숨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것일 수 있다.

하찮게 여겼던 돌멩이 하나, 나무 한 토막, 흙 한 줌, 바람 한 점, 햇빛 한줄기, 물 한 방울, 스치듯 만났던 인연들의 존재가 어느 순간엔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로 다가온다.
뒹구는 돌멩이 하나가 주춧돌이 되고 디딤돌이 된다. 반듯한 돌은 구들이 되기도 하고 발판이 되기도 한다. 값진 보석도 돌 속에 박혀있다. 솜씨 좋은 석공을 만나면 세월을 뛰어넘는 유물이 된다. 나무 한 토막은 겨우내 아랫목을 달구는 땔감이 된다. 지팡이가 되어 삶의 무게에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해 준다. 혼자 설 수 없는 것들의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눈썰미 있는 주인을 만나면 공간을 빛내는 소재가 된다. 집이 되고 가구가 된다. 
흙은 생명의 시작과 끝이다. 흙은 대지에 존재하는 어머니와 같다. 모든 식물은 흙으로부터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사람도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모든 걸 품어주고 감싸주고 길러준다. 하찮게 여기는 잡초는 땅의 건조를 막고 땅속의 영양분을 끌어올려 토양을 기름지게 한다. 강력한 뿌리의 힘으로 토양의 유실을 막아낸다. 잡초는 고마운 존재지만 사람이 마음대로 정해놓은 가치 기준에 따라 천대받으며 악착같이 뽑혀 나갈 뿐이다. 우리가 몸에 좋아 캐서 먹는 냉이, 달래, 쑥이 다른 나라에서는 잡초가 된다.

남미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서는 토네이도를 일으킨다는 나비 효과는 하찮게 여기는 작고 미세한 행위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현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바람은 구름을 몰고 다니며 비를 뿌리고 미세먼지도 날려 보낸다. 자연에서 바람은 사람의 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고 원활하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바람을 잘 이용해야 한다. 새나 곤충들도 바람을 타고 비행한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 실려 몇 킬로 미터를 날아가 뿌리를 내린다. 인류 문명의 발달에 바람을 이용한 범선의 항해는 한 축을 담당했다. 자연 친화적 에너지원으로서 풍력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더불어 공기 한 모금, 햇빛 한줄기, 물 한 방울이 살아가는 모든 것에 미치는 절대적 영향력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단지 우리 옆에 늘 있는 듯 없는 듯 머물러 있기에 당연하게 여길 뿐이다. 한순간 햇빛이 사라지고 물이 마르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어느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며 타다 버려진 연탄재의 존재에 마저 타인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담아냈다. 연탄재와 비교되는 한 개인의 존재는 얼마만큼의 무게일까?
하찮은 신분도 직업도 없다. 어느 누가 사람의 직업을 놓고 귀천을 논할 수 있는가. 어느 누가 신분의 높고 낮음을 규정하며 군림하고 굴종하게 할 수 있는가. 하찮은 일은 더더욱 없다.
하찮게 여기는 그 일을 누군가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일상은 흐트러지고 마비될 것이다. 그 누구의 삶의 무게와 가치도 하찮은 것이 될 수 없다. 때론 하찮게 여기거나 애써 무시하곤 했던 것들이 중요한 순간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기본에 충실하고 감정에 솔직하며 행동으로 옮겼던 일상의 사소함이 출발의 밑거름이 되거나 도약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어느 국가와 국민에게는 생존을 건 탈출을 해서라도 누리고 싶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민심이다.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하찮게 여기며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위정자의 처참한 말로는 역사에서 증명되었다. 
하찮게 여기는 마음이 있을 뿐, 하찮은 것은 없다. 하찮은 것들이 온몸으로 토해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은 더불어 사는 세상의 아름다운 조화와 변화를 갈망하는 몸부림이다. 오늘도 그 소리 들에 귀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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