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가마솥 이야기
(3)가마솥 이야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3.17 09:42
  • 호수 6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한면 차정리 이영준씨가 큰 가마솥에 물을 가득채우고 군불을 떼고 있는 모습이다.
수한면 차정리 이영준씨가 큰 가마솥에 물을 가득채우고 군불을 떼고 있는 모습이다.

보은군 수한면 차정리 이영준(79)씨는 오늘도 사랑채에 걸어 놓은 8통 짜리 큰 가마솥에 물을 가득 채우고 군불을 때어 뜨거워진 온돌방의 아랫목에서 부인과 농사일로 지친 몸을 달래고 계신다. 이 가마솥은 이영준씨가 55년 전인 1967년도에 손수 집을 지으시면서, 양반 댁 가옥 모습의 사랑채를 지어 외부 아궁이에 걸어두고, 얼마 전까지도 소죽을 끓이면서 삶의 추억이 켜켜이 녹아있는 가마솥이다.
가마솥 주위의 벽과 마루, 천정에는 지나온 세월  만큼이나 이 가마솥에 불을 때면서 나오는 연기로 만들어진 검디검은 그을음이 두텁게 쌓여 이 집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지금은 농촌마을도 전기밥솥 등 생활도구의 발달과 극심한 소가족 제도로의 변화로 가마솥을 보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보은의 농촌마을에 살던 50대 이상의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부엌이나 헛간채 부뚜막에 걸려 있던 가마솥을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또한'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박박 긁어서 선생님은 한 동이 나는 한 사발, 선생님은 소 배 나는 사람 배' 라고 흥얼거리던 노래도 기억하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가마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지역에서는 생명을 이어주는 보물 같은 존재였다. 삼국시대부터 사용한 가마솥은 철기문화가 발달하면서 주철(무쇠)로 만들어 지기 시작했으며, 재료인 무쇠는 통상 강함을 연상케 하나, 실은'물은 쇠'에서 변형된 말로 쇠가 물러 가공하기가 쉬어 농기구나 생활도구 만드는데 많이 사용했다.
가마솥의 모양은 전국적으로 천년이상을 사용하면서 지역에 따라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게 변형되었다. 보은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 경기도, 전라도는 솥의 윗부분이 좁아지는'옥솥'을 사용하였고, 강원도와 경상도는 솥의 윗부분이 넓은'통솥'을 많이 사용했다.
대부분'가마솥'하면 소의 죽을 끓이는 큰 솥을 연상하지만 옛날에는 수많은 식구들의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무쇠 뚜껑이 있는 크고 작은 솥은 모두'가마솥'이었다. 가마솥은 무거운 무쇠 솥뚜껑 덕분에 높은 압력을 유지하여 아주 맛있는 밥이 만들어 진다. 또한 부엌의 첫 번째 아궁이에 걸어 놓은 큰 가마솥은, 60-70년대는 물을 끓여 부엌바닥에 고무다라를 놓고 목욕을 하였고, 흰콩을 가득 넣고 삶아 절구에 찧어 메주를 만들었고, 흰콩을 맷돌로 갈아 가마솥 가득히 붓고 어머니가 밤새워 부뚜막에 앉아 졸음을 참으면서 콩물이 타지 않도록 저어 만든 맛있는'울 엄마표'두부를 만들었다.
헛간채나 사랑채에 걸어 놓은 큰 가마솥은 주로 소죽을 끓이는 용도로 사용하였는데, 개구쟁이 시절 겨울에 썰매 타느라고 때가 끼고, 얼어서 갈라진 땟국 손등을 소죽을 퍼내고 남은 찌꺼기로 때를 씻어낸 후 보들보들하게 변한 손을 자랑스럽게 내밀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가마솥과 함께 어제처럼 떠오른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