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딜방아 이야기(2)
디딜방아 이야기(2)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3.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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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딜방아는 절구모양으로 우묵하게 판 돌에 곡식을 넣고 함께 발을 밟아 고루  찧어주는 도구로 'Y'자 형인 양다리방아를 사용했다.
디딜방아는 절구모양으로 우묵하게 판 돌에 곡식을 넣고 함께 발을 밟아 고루 찧어주는 도구로 'Y'자 형인 양다리방아를 사용했다.

디딜방아는 수공업으로 만들어 크기와 모양새가 지방마다 동네마다 다양하고, 중국 일본 인도 동남아시아의 디딜방아는'-'자인 외다리이나, 우리는 독특하게'Y'자 형인 양다리방아를 사용하였다. 방아의 크기는 넓은 경작지를 가진 평야에서는 수확되는 곡물이 많아 일시에 많은 방아를 찧어야하므로 크고, 방아를 찧는 사람도 5-6명이 필요하기도 하였으나, 경작지가 좁은 산간 지방은 수확량이 적어서 그런지 방아 크기가 대부분 작다. 
보은지방의 경우,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최태하 가옥'과'최재한 고가'에 있는 디딜방아도 양다리 형으로 최재한(74)님은'내가 어린 시절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두 개 모두 헛간을 복원하면서, 잡는 줄과 가운데 받침은 변형되었지만 방아채와 공이, 돌확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신다. 
최태하 가옥의 디딜방아는 방아채 길이가 360cm로 강원도와 전라도 디딜방아 크기의 중간 정도이며, 다른 지방은 통나무를 원통 또는 정사각형으로 다듬은데 비해, 통나무를 가로 10cm, 세로 20cm의 직사각형으로 다듬어 방아 몸체의 무게를 줄여 작업자가 힘이 덜 들도록 만들었고, 공이가 있는 머리로부터 3/2지점 몸통에 구멍을 뚫고 가로 목을 넣어 지렛대의 축을 만들었다. 공이는 머리로부터 45cm 지점에 100cm 길이의 나무공이를 꼽고, 공이 밑에 넓이 36cm에 깊이 28cm로 돌을 파내어 만든 방아확을 묻었다. 주로 벼나 보리의 껍질을 벗기 좋게 만들었다. 최재한 고가의 디딜방아는 방아채가 다소 짧은 300cm이나 몸체는 최태하 가옥의 방아와 같이 직사각형으로 만들었고, 지렛대 축은 공이가 내려오면서 더 힘을 받도록 방아채의 2/3 지점을 지난 216cm의 다리 접합부위에 가로 목을 만들어 밟기는 힘이 들지만 공이가 내려오면서 더 무겁게 방아확으로 떨어진다. 공이는 지금으로서는 전국에서도 찾기 힘든 돌공이를 사용하였다. 돌로 만든 공이는 둘레 36cm의 원형 돌기둥을 길이 25cm로 잘라 나무공이 끝에 홈을 파고 고정하여 깊이 23cm에 넓이 26cm의 돌로 만든 방아확으로 무겁게 떨어지도록 만들었다. 주로 쌀이나, 콩, 고추의 가루를 만들기 위한 디딜방아이다.
형제분이 옆집에 살았으므로 방아를 찧는 것은 최태하 가옥의 디딜방아를, 가루를 빻는 것은 최재한 고가의 디딜방아를 사이좋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방아는 낟알의 껍질을 벗길 때는 키로 까불고, 가루를 낼 때는 체로 치면서 찧었는데, 통상 시어머니는 확 앞에 앉아 곡식을 뒤집어 주고, 며느리와 딸은 방아다리를 밟았는데, 사이가 좋지 않은 고부간에도 장단을 잘 맞추어 사고 없이 방아를 찧으면서, 고부간에나 시누이 사이의 감정을 누르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화합하는 길을 터득했는지 모르겠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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