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걷는 동학순례길· 장안
겨울에 걷는 동학순례길· 장안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3.03 10:35
  • 호수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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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정 미 동학혁명북접사업회(동학민회)

보은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한가한 계절은 겨울이다. 이런 이유로 겨울에 보은을 걷기로 하였다. 시원한 찬바람을 마시며 걷는 활동은 몸과 마음의 환기를 돕는다. 삶의 배경이 되는 공간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걷는 이의 이야기가 어우러진 도보는 항상 새롭다. 
1월 15일 오늘은 서원, 장안, 개안리를 걸었다(장안순례길). 영하8도에 바람이 차지만 햇살은 좋았다. 차로 서원리 소나무로 이동하였다. 이 나무는 사내리 입구의 정이품송의 부인송으로 알려져있다. 소나무는 암수한몸이지만 암술과 수술이 개화하는 시기는 달라서 타 소나무들과 수분하여 종족을 건강하게 이어간다. 서원리 소나무의 모습은 가지가 하늘을 모두 가릴 정도로 풍만하다.
삼가저수지에서 내려오는 삼가천을 따라 서원리 농촌휴양마을에 주차를 하고 걷는다. 냇가 왼쪽으로 병무청 사회복무연수센터 정문을 지나 작은 논밭이 있고 충북알프스 등산로에 합류할 수 있도록 안내판과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삼가천 다리를 지나면 충청북도 최초의 상현서현이 자리하고 있다. 사림파로 조광조와 함께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개혁 정치로 미신 타파, 향약의 실시, 정국공신의 위훈삭제(僞勳削除) 등을 추진하다 사사된 김정을 추모하기 위한 서원이다.  
서원과 장안의 경계지역 냇가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꽁꽁 언 얼음판에서 서로 손을 잡아 미끄럼을 타며 동심 속에서 잠시 해찰하는 재미가 있다. 이제 장안에 들어선다. 옥녀봉 아래 논밭을 양쪽으로 두고 중앙으로 마을은 둥지를 틀었다. 이 마을 10만평 규모에 129년 전 동학인 수만 명이 한 달 동안 들락날락하며 머물던 장소이다. 이곳은 그 당시 이미 10년 동안 동학의 중심지역할을 하던 지역으로 200여 채의 농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1860년 경주의 수운으로부터 시작된 동학은 수운, 해월과 함께 사람과 만물이 귀중함을 자각하고, 가장 낮은 곳에 있었던 아이, 여성을 막론하고 계급을 해체하고 사회, 국가를 생각하는 주체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이곳 장안에서 스스로를 민회라 말하며 정부와 한 테이블에서 당당하였다. 보국안민, 척왜양창의, 이 구호는 지금도 유효하다. 계급의 수직사회가 자본의 수직사회로 바뀐 것뿐이다. 동학영령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허허벌판을 휘 돌고 있다. 이미 1993년 충북대 호서문화연구소에서 장내리, 종곡리 현장조사 및 학술대회를 통해 사적, 역사적 의미를 실증 평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안은 시간이 멈춘 상태이다. 보은동학민회의 전사인 공주집회, 삼례집회는 이미 사적지로 지정되었다. 우리도 사직지화 하여, 129년 전 동학민회 현장을 복원하여 교육의 장으로 조성하길 바란다. 동학의 삼경사상은 미래학이기도 하여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철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치가 크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개안리 우당고택을 향한다. 1894년 이두황에 의해 장안이 초토화 된 이후에 짓기 시작한 우당고택은 건축학적 의미도 크지만 관선정을 통해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자본의 사회 환원 의미를 되새겨본다. 옛 책에 마을에는 자체적으로 3명의 스승으로 어진 덕이 있는 자, 재물을 베푸는 자, 사리를 잘 아는 자를 두었다고 한다. 이런 스승이 없다면 스스로 스승이 되도록 성장하여 미래세대에게 힘이 되도록 지혜를 모을 때이다.
(동학순례길 안내 ☎043-543-1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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