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오빠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2.17 09:15
  • 호수 62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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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혀를 아래로 궁글리며 불러보는 
오빠, 라는 말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넘쳐나게 하는
오빠라는 말
아홉 살 차이가 나는 나에게 세상의 오빠는
단 하나 뿐인 줄 알았다

고등학생 적은 용돈을 덜어 내 저금통을 통통하게 채워주던, 소풍가는 먼 곳까지 빨간 모자를 사들고 와 내 머리에 얹어주고 가던, 엄마가 사온 긴치마를 짧고 예쁜 치마로 손수 바느질해주던, 여자도 배워야 한다, 바르게 살아야한다, 작은 나를 붙잡고 꽃다지 같은 나를 붙잡고, 세상사는 법을, 꽃피우는 법을 가르쳐주던,

사촌이나 친척오빠에게 오빠라고 불러주면 왠지 나의 하나 뿐인 오빠에게 미안한 것 같아서 어릴 적 나는 다른 오빠들에게 오빠, 라고 불러주지 않았다 어릴 적 나의 가슴은 아주 작아서, 병아리 같아서,

환갑의 오빠와 상가에 갔다 거기에 모인 오빠들에게
오빠, 술 한 잔 해, 오빠, 이것도 먹어봐, 
그렇게 한 번도 불러주지 못한 오빠들에게 미안해서
오빠, 오빠, 오빠, 마구 불러주면서
나 혼자 가두기에는, 내 오빠에게만 불러주기에는 너무 좋은 말
오빠, 라는 말,
세상의 모든 오빠들에게 오빠, 오빠, 오빠, 마구 불러주면
세상의 모든 오빠들 오월의 나무처럼 잎을 쑥쑥 내밀겠지
힘이 나겠지
                   - 오빠,라는 말 - 전문

나에겐 아홉 살 위인 하나뿐인 오빠가 있다. 동생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위의 시는 그 오빠를 생각하며 오래 전에 쓴 시다. 오빠는 부산에서 공직생활을 마치고 딸네가 사는 음성으로 이사와 살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병원에 가면서 나에게 들러 함께 점심을 먹곤 하는데, 굳이 밥값을 오빠가 내곤 한다. 올 때도 빈손으로 온 적이 없다. 오는 길에 있다며 찐빵과 만두를 사오기도 하고, 가끔 옷을 사오기도 하고, 양산을 사다주기도 하는 등 어릴 적 챙겨 주던 걸 지금까지 하고 있다. 때론 용돈을 쥐어주기도 한다. 이젠 내가 갚아야하는데 70대 중반을 넘은 오빠의 눈엔 아직도 내가 어려보이나 보다. 자기가 보살펴야하는 동생으로 밖에 안 보이나 보다. 내가 밥값을 낼라치면 극구 말리며 불편해한다. 아버지의 사랑만큼이나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아직도 받고 있다.
금수저가 아닌 흙수저로 우리 형제들은 태어났지만, 누구 하나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고 모두들 서로 아끼며 자주 안부를 물으며 잘들 살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진 못하셨지만, 사랑만큼은 듬뿍 물려주셨으니 더 없이 고마울 뿐이다. 재산이야 없어지면 그만이지만, 듬뿍 받은 사랑은 평생을 살아가는 힘이 되곤 한다. 아웅다웅 부모 재산을 가지고 형제끼리 싸움하는 걸 보면 돈보다는 사랑이 얼마나 값진 걸 알 것만 같다.
정월대보름이다. 솜이불 속에서 발장난을 하던 동생들이 그립고, 부럼을 준비해 놓고 우리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리던 외할머니가 그립고, 새벽녘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엄마가, 쿨럭쿨럭 기침을 하며 소여물을 준비하던 아버지가 그립고, 타지에 나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오빠가 그립고, 아주 자그마했던 내가 그리운, 그리운, 정월대보름날이다. 대보름 지나고 삼일 후면 오빠의 생일이다. 언제 오빠가 좋아하는 손칼국수를 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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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장 2022-02-23 08:37:37
저도 여동생이 있어서 인지.. 가슴 뭉클해지네요.. 여동생 생각하며 폰을 들어봅니다. 좋은 기사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