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한면 발산리 105세 임정심 어르신·67세 이상임씨의 고부찬가
수한면 발산리 105세 임정심 어르신·67세 이상임씨의 고부찬가
  • 심우리
  • 승인 2022.01.27 12:00
  • 호수 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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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를 토닥이며 매일매일 두터운 정을 쌓고 있다

설명절이 돌아온다. 코로나로 인해 타지에 사는 자식, 형제자매들의 귀성이 올해도 어려울 듯싶다. 늘 자식 걱정을 하는 고향의 부모님은 애가 닳는다. 이제나 저제나 자식이 전화라도 할까봐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이렇게 고향엔 자식이 보고싶어 눈물 마를날 없는 부모님이 계신다.

105세의 시어머니(임정심 어르신)를 모시고 사는 67세의 막내 며느리 이상임씨.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법도 하지만 시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움직임을 살피며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서 고부간의 두터운 정이 느껴진다.<br>
105세의 시어머니(임정심 어르신)를 모시고 사는 67세의 막내 며느리 이상임씨.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법도 하지만 시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움직임을 살피며 언제나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에서 고부간의 두터운 정이 느껴진다.

이번호엔 설 명절에 즈음해 105세 고령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막내며느리 이상임씨, 그리고 쌍둥이인 24살 아들까지 함께 사는 3대 가정의 다복한 사연을 소개한다.
요즘 3대가 함께 사는 가정은 거의 찾기가 힘들다. 2대도 찾기 힘든데 3대가 사는 가정은 문화재급이 아닐까? 수명은 늘었으나 거동이 불편한 채로 사시는 어르신이 많고 또 맞벌이가 일반이 되면서 거동이 불편한 가족을 전담 케어하는게 쉽지 않다. 그래서 비용 부담을 하더라도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노인요양시설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정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상임씨네는 3대가 함께 살면서 그것도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흔하지 않는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임씨네 가족 구성원 중 가장 관심을 받는 사람 1순위는 역시 105세 시어머니 임정심씨이다. 시어머니 임정심씨에게 1순위는 5남매 중의 막내아들인 유명길씨이다.
고령의 어머니는 막내아들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고 막내아들은 고령의 어머니를 위하는 마음이 절절해 거실에서 같이 생활할 정도다. 고령의 어머니 거동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에서 아들이 옆에서 함께 잠을 자며 지켜보니 어머니는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게 되는 것이다. 아들은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만이라도 아내인 이상임씨가 안방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모자간의 정과 부부간의 정을 어떻게 자로 잴 수 있을까? 이들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이심점심으로 서로에게 스며드는 것 같다.
막혀있는 곳에서 지내는 것을 싫어하는 시어머니는 거실에서 지내며 넓은 창을 통해 바깥을 구경하며 계절을 느낀다. 활발한 성격이고 또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 날씨가 좋을 때는 거실 밖 베란다에도 나가서 한참 앉아 있기도 했다.
시어머니의 이런 성정을 잘 아는 이상임씨는 시어머니에게 속칭 콧바람을 쏘여드리기 위해 수시로 한 두 시간 드라이브를 시켜 드린다. 장에 나갈 때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볼일 본 후 곧바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한 시간 이상 드라이브를 하며 주변을 구경하게 한다. 한 시간 이상 차를 타면 보통 허리가 아프다고 할 수 있는데도 시어머니는 아프다는 말씀 한 번 안하신다고 했다. 오히려 좋다 좋다를 연발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바깥바람을 쏘여드리는 이유가 집에 돌아오시면 기분이 전환돼서인지 식사를 잘하신다고 했다. 아마도 뇌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이 분출돼 기운이 나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잡수시는 것은 어떨까? 시어머니는 토속적인 음식, 얼큰한 음식을 좋아한다고 했다. 된장찌개, 두부 김치찌개 등에 자주 젓가락이 가는데 조금씩 자주 자주 음식을 섭취한다고 했다.
빵, 과자, 과일 등 시어머니 식미에 맞는 간식을 수시로 드시게 하기 위해 침대 머리맡에는 간식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
취재를 위해 이상임씨 집을 방문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상임씨는 자주 화장실 출입을 하는 시어머니를 부축하느라 엉덩이를 붙이고 바닥에 앉아있을 겨를이 없었다.
몸이 힘들고, 마음은 지치고, 심정적으로는 지겨울 법도 하지만, 그러다 보면 짜증이 날만도 하지만 시어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움직임을 살피며 대답하는 이상임씨의 목소리는 리듬을 타는 것처럼 통통 튀었다.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은 얼마나 또 환한지.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그 이상의 관계로 느껴졌다.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나 해서… 
사람인데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이상임씨는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어 하면서 늘 마음을 다스린다고 했다.
23년 전 부터 함께 사시던 시어머니가 서울 큰 아들 집에서 10여년 사시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신 지는 한 5, 6년 됐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는데 눈도 못뜬 채 누워있던 시어머니가 막내며느리 목소리를 듣고 손을 꼭 잡더니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런 시어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아렸던 이상임씨는 "어머니 집에 같이 가고 싶으세요?" 라고 하자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앰뷸런스를 임차해 그 길로 수한면 발산리 시어머니가 사시던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때가 100세 무렵이다.
집에 오셔서도 시어머니는 5개월 이상 누워 지냈다. 침대라도 있었으면 병구완하기가 좀 더 수월할텐데 방바닥에 누워 계시는 상황이어서 간호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침대가 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던 이상임씨를 하늘이 도운 것일까 주변 지인의 도움으로 병원용 침대를 구할 수 있었다. 방바닥에 누워있는 것과 침대에 누워있는 것의 병구완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얼마나 수월한지 몸도 훨씬 덜 힘들었다. 누워만 지냈던 시어머니도 차도를 보였다.
그때부터 이상임씨는 시어머니 운동에 신경을 썼다.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불과 몇발자욱만 떼면 되는 거리였지만 걷게 했다. 화장실 가는 시간을 놓쳐 실수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렇게 운동을 하면서 시어머니는 정신도 점점 맑아져 본인 스스로 대소변을 보고 싶다는 것을 느끼는 상황으로 호전됐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며느리 이상임씨의 간호력으로 시어머니의 오감이 깨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있다고 내버려두라고 며느리에게 앉아있으라고 손을 내저을 정도까지 호전됐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없고 어지러워하는 시어머니가 자칫 넘어질까봐 꼭 부축해서 화장실 입구까지 가고, 그 앞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침대까지 모시고 오는 일을 하루에도 몇 차례를 반복한다.
힘들 때가 왜 없겠느냐고 하면서도 지금 105세인데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시겠어요. 라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어머니가 준 내리사랑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 기억 중에는 임신 중 입덧으로 올갱이국을 먹고 싶어하는 며느리를 위해 수한면 발산리에서 보은읍내까지 걸어가서 사가지고 오셨던 장면이 가슴속에서 저장돼있다.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면 눈이 짝짝이가 된다고 하면서 차려주셨다고 했다. 과거의 기억과, 그리고 지금 105세라고 믿지 못할 정도로 건강해진 시어머니를 보면서 힘들어 하는 자신을 일깨운다고 했다.

#제가 엄마를 닮았어요
6남매 중 넷째인 이상임씨가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한 것은 순전히 어머니를 본받았다. 시어머니가 81세 되었을 때 첫 손주로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시어머니 봉양하면서 아들 키우는 것을 어려워하는 이상임씨는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많이받았다.
쌍둥이가 아파서 청주 병원을 간다고 하면 엄마가 미리 병원에 와 계셔서 아들들을 봤다. 아들이 여섯 살 될 때 갑자기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때문에 한동안 마음을 못잡아 방황하고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친정어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며 아들 하나는 업고, 하나는 안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고, 아들 하나는 요람에 누여놓고 흔들어주고 하나는 안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친정어머니의 각별한 사랑을 받은 이상임씨는 친정 엄마가 정이 많았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잘하시는 것을 보고 자라서인지 제가 어른들에게 하는 것을 본 형제들이 엄마랑 똑같다고 한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보육원에 맡겨질 처지에 놓인 외사촌 동생의 딸을 위탁받아 키웠을 정도다.
3살 때 위탁받아 스무 살 넘어서까지 키워 독립시켰는데 딸처럼 키우는 것을 느꼈는지 처음에 고모라고 하던 조카가 나중에는 스스로 엄마라고 했을 정도다. 
그런 이상임씨의 선한 영향력은 아들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 들어간 큰 아들과 충남대학교에 진학한 작은 아들 모두 장학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버는 등 독립심도 강하고 어른들에게 예의바르다. 엄마가 할머니를 봉양하느라 꼼짝없이 붙어있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엄마 제가 할머니 볼 테니까 좀 쉬세요"라고 말하고 간식도 챙기고 화장실 출입도 도우며 안심을 시킨다. 그런 아들 둘이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이같이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하는 이상임씨의 효성은 주위에 알려져 수한면체육회로 부터 효부상을 받고,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중앙회에서도 효부상을 주며 이상임씨를 칭송했다.
집안일 때문에 외부활동을 하지 않을것 같은 이상임씨는 의외로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13㎏ 등짐을 지고 30분 안에 공설운동장 4바퀴를 도는 보은군 산불진화대 공모에도 응모하기도 했다. 비록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시간 안에 들어오는 기록을 세워 자신감을 찾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수한면 새마을부녀회장, 그리고 발산리 부녀회장을 하는데 이 또한 생활에 활력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67세이지만 10년은 더 젊어보이는 용모다. 고령의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을 병간호 하느라 고생했으리라고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처지를 비관하기 보다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105세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 이상임씨에게 딱 어울리는 문구다. 목욕시켜드리면 개운하고 시원하다며 고맙다는 시어머니의 칭찬에 며느리 이상임씨는 다시 기운을 낸다. 오늘도 수한면 발산리에서는 이상임씨와 임정심씨의 고부찬가(姑婦讚歌)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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