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움직이고, 소식하는게 건강비결이지"
"꾸준히 움직이고, 소식하는게 건강비결이지"
  • 심우리
  • 승인 2022.01.20 11:45
  • 호수 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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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에도 자전거를 타고 관기로 볼일 보러 다니는 마로면 송현리 박영래 어르신

자전거. 어릴적부터 타는법을 배워 꽤 오랜 세월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해준 이동수단이다. 학생 때는 등하교를 하면서, 성인이 된 후에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 혹은 걸어가긴 멀고, 차로 가기엔 애매한 거리를 오가기 위해 많이 타곤 했다. 이처럼 자전거는 누군가에게는 운동기구로, 누군가에게는 이동수단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린시절 추억이 가득 담긴 물건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기억된다.
이런 자전거와 80년을 넘는 세월을 함깨해온 사람이 있다. 바로 마로면 송현리에 거주하고 계신 박영래(95)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올해 95세를 만은 송현리의 박영래어르신

#어린 나이에 들어간 특경대
박영래 어르신은 1928년 마로면 송현리에서 태어나 관기초등학교(22회)를 졸업했다. 박영래 어르신의 할아버지 세대 때부터 송현리에 정착해 살았다고 하니 꽤 오랜 세월을 송현에서 살아온 송현리의 토박이 집안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경대에 들어가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박영래 어르신이 소속된 특경대는 내속리 특경대였는데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뚜렷하다는 듯이 "내가 그때 천마산에서 무장공비 토벌작전에 투입됐었는데 당시 작전에 투입된 인원이 800명이 넘었어. 보은에서만 한 100명 정도 투입됐었지"라며 특경대로 있을 당시의 이야기를 시작 하셨다. 이어 박영래 어르신은 "당시 수류탄도 터지고 기관총도 쏘고...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어. 작전 끝나고 바로 복귀해서 희생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길도 없었어"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약 22세까지 내속리 특경대에서 활동했던 박영래 어르신은 23세의 나이에 충주경찰학교에 입학했다. 중간에 지리산 전투부대로 들어올 것을 요청 받았으나 느낌이 좋지 않아 거절했다고 한다. 경찰학교를 나와 26세의 나이에 군대에 입대해 5년여간의 복무 생활을 마치고 전역했다. 
박영래 어르신은 "그때 전투부대 들어갔으면 입대를 하지 않아도 됐는데 내가 거절했으니 어쩔 수 없이 군대에 입대를 했지"라며 "그래도 후회는 안해. 그 때 헌병대 들어갔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5년여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30대가 된 박영래씨는 다시 고향 마로면 송현리로 돌아왔고 그 후로는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있다.

박영래 어르신이 끌고 다니던 리어카.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 시작한 농사
군대를 전역하고 돌아온 고향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박영래 어르신은 당시 논 5마지기(약 1천평)와 800평의 밭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농사를 지었던 당시에 박영래 어르신은 그 흔하다는 경운기도 빌려 탔고 구루마와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농사를 지었다.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다보니 어느새 땅은 6천평으로 늘어나 있었고 소도 여러마리 키우게 됐다고. 하지만 이후 땅 3천평과 소들을 팔아 자녀들의 학비로 대주었다. 
박영래 어르신의 이러한 아낌 없는 지원 덕분인지 2남 2녀의 자녀들 모두를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특히 장남이자 맏이인 박경국씨는 충북대학교 출신 첫 행정고시 합격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충청북도 공무원을 거쳐 국가기록원장, 행정안전부의 차관을 지냈을 정도였다. 
박영래 어르신은 "자식들 공부 시킨다고 땅도 팔고 소도 팔고 그랬는데 "자식들 건강하게 키워서 공부시키면 그게 부모의 행복이고 보람이지"라며 웃어보였다.
박영래 어르신이 80년도에 사서 쓰기 시작했다는 리어카는 지금까지 어르신과 함께 해온 세월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마당에 고이 놓여져 있다. 망가지지 말라는 의미에서인지 박영래 어르신이 사용하던 리어카는 꼭꼭 묶인채로 마당 한켠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박영래 어르신이 얼마나 자기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시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박영래 어르신은 94세였던 작년까지도 농사를 지으셨다고 한다. 비록 나이가 들고 아픈 곳이 점점 늘어나 진즉에 논은 농어촌공사 측에 위탁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약 300평 정도의 밭에서 들깨 농사를 짓고 계신다. 
박영래 어르신은 "재작년 (2020년) 까지는 콩이랑 들깨 농사짓고 그랬는데 콩 농사가 힘들어서 작년부턴 들깨만 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95세에도 자전거를 타고 관기로 볼일 보러 다니는 마로면 송현리 박영래 어르신.

#박영래 어르신의 건강비결은 자전거?
95세가 됐음에도 여전히 혼자 농사를 지으실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보이고 계신 박영래 어르신의 건강 비결은 바로 '자전거'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박영래 어르신은 15세때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해 95세가 된 지금까지도 자전거를 애용하신다고 한다. 80년이란 세월을 자전거와 함께하신 것이다. "내가 군대를 가서 복무할 때 얼차려를 많이 받아서 그거 때문에 허리를 다쳤는데, 그게 나이 들어서는 골다공증으로 번져서 힘들어. 무릎도 그렇고. 허리 아프기 전까진 매일 집에서 관기까지 자전거 타고 다녔지 운동삼아. 근데 이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해서 잘 못타. 가끔 생활용품 사러갈 때만 타고다니지." 
허리가 아프기 전까지는 마로면 관기리까지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는 박영래 어르신의 당시 나이는 70대였다. 
박영래 어르신이 살고있다는 송현리로부터 관기리까지의 거리가 1km정도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70세의 나이에 매일 운동삼아 자전거를 타고 2km 정도의 거리를 오가셨다는 것이다. 
멀리는 송현리에서 큰딸이 사는 탄부면 대양리까지 다니기도 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때는 충북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아들 선거운동을 위해 마로면내와 장안면 불목리까지도 자전거로 오가며 선거운동을 했을 정도. 고령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세월 자전거를 타신 만큼 자전거도 여러번 바꾸셨다. 여러번이라고는 하나 현재 사용 중인 자전거까지 모두 4대다. 더군다나 오래되고 고장난 자전거도 그냥 버리시지 않고 창고에 고이 두고 보관하고 있다. 정말로 물건을 아끼신다는 것이 느껴진다. 
박영래 어르신의 또 다른 건강 노하우는 식습관에 있다. 박영래 어르신은 "절대 과식하지 말고 소식해야해. 밥은 잡곡밥으로 먹고, 매일 아침 일어나서 공복에 따뜻한 물을 꼬박꼬박 챙겨먹어. 그게 몸에 좋데. 그리고 난 마늘을 좋아해서 무슨 요리 한다 그러면 마늘을 꼭 넣어 먹어. 술은 3~4일에 한번씩 마시는데 딱 한 잔씩만 마셔. 원래는 담배도 폈었는데 몸에 안좋다해서 끊었어"라며 건강비결을 이야기 하셨다. 이어 그게 몸에 안좋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영래 어르신은 "텔레비에서 몸에 안좋다고 그래서 끊었어"라며 웃어 보이셨다. 
자전거를 자주 타지 못하게 된 지금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박영래 어르신. 방에서 15분의 허리, 다리체조와 20여분의 기구를 이용한 허리 운동을 하루도 빠짐 없이 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80년 동안 자전거와 함께해온 박영래 어르신. 100세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누구보다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계신 것은 바로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자전거 덕은 아닐까. 
"지금은 그저 이대로만 계속 잘 살았으면 좋겠어. 매일 운동하고 밥 잘 챙겨먹고...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욕심은 없고 그냥 이대로만 잘 살면 더 바라는 것도 없어"라며 웃어보이는 박영래 어르신. 
100세까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동시에 게을리 했던 나의 생활습관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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