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보은읍 지산2리,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당이 있는 효자마을
(29)보은읍 지산2리,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당이 있는 효자마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2.16 10:42
  • 호수 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이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던 말 밤이 자라는 효자 못 마을, 5~60년대 사람들은 지금도 지산 못 하면 말 밤을 떠올리곤 한다.  
겨울 날씨 같지 않게 훈훈한 바람이 서니고개를 넘는 필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오늘은 아카시아 나무가 많아 서니고개로 불리는 지산2리 마을을 소개하는 날이다. 지산2리는 천곡리(泉谷里), 두지리(斗之里), 홍계리(洪介里), 개경리(開慶里)를 통폐합하여 지산리(芝山里)라 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유래비를 지나 최경기이장님을 만나기 위해 마을에 들어서는데, 김정자(82)어르신이 양지쪽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마늘을 까고 계신다. 어르신께서 농사 지으신 마늘인가요? 하며 필자가 아는 체를 하니, "네 농사지은 마늘인데, 김치를 담그려고 준비하는 중이랍니다." 혹시 이 마을에 오래 사셨는지요? 그럼요. 23살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으니 좀 살았지요. 그런데 왜 그걸 물어 보시나요? "아! 네 마을 소개 글을 쓰고 있는 양화용인데요." 이장님을 뵙고 마을소개를 받으려고 찾아 왔는데, 혹시 이장님이 어디 계신지 아시나요? 이장님은 지금 하우스 일을 하느라 바쁠거라고 하시면서 마을 입구에 있는 밭으로 가면 볼 수 있을 거라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혹시 마을 내력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하고 김정자 어르신께 지산리 마을소개를 부탁드리니, 우리 마을 뒤쪽으로 서리고개가 있는데, 옛 부터 아카시아 나무가 많아 그리 불렀다고 하더라구요. 예전에는 효자(지산)못에 가시연꽃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연못을 이야기 하시니 어렸을 때 친구들과 말 밤을 따러 왔던 기억이 나네요. 맞아요. 예전에는 지산 연못에 말 밤이 많이 나왔지요. 말 밤이란 물속에서 자라는 마름(지실)이라는 물풀 열매인데, 하찮은 밤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물풀열매이다. 그 당시 말 밤 맛이 그렇게 좋았던 기억이 난다.  

#지산리는 권력, 왕권, 신성의 뜻이 있다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당이 있는 효자 마을 
김정자 어르신이 가리키는 대로 최경기 이장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을입구에 있는 유래비를 살펴보는데, 지산리(芝山里)는 등산리(登山里), 천곡리(泉谷里), 뉴항목리(杻項目里)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다. 등산리는 건질봉 아래 있다고 해서 지산리(芝山里)로 뉴항목리는 홍개리(鴻介里,홍갓들)로 개경리(開慶里,노가끔)로 나뉘었다고 한다. 지산리는 회룡고조(回龍顧祖)의 명당으로 전하는데, 이는 금적산 줄기가 읍을 향하여 북으로 뻗어오다 수정리에서 한줄기가 활처럼 굽어 남으로 내려와 금굴에서 멈추었다고 한다. 조선 초 김쉬라는 부자는 이시애의 난(1467년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정권을 잡자 회령부사로 있던 이시애가 함경도 지방 사람들의 차별에 대한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때 일천석의 군량미를 국가에 헌납 국난극복에 공헌하였고, 백씨라는 효자는 엄동설한에 남쪽 저수지에서 잉어를 잡아 부모님 병환을 고쳐 효자 못이 되었다고 한다. 영산 부원군 김수온 부조묘를 1664년 우암송시열이 이곳으로 옮긴 것도 명당을 찾아 세웠고, 그 기념으로 마을 앞에 물푸레나무를 심고 그 아래 학문에 힘쓰라는 선학동(仙學同)이란 표지석을 세웠다고 한다. 마을 유래비에 지산마을 노래가사가 쓰여 있었다. 유래비를 읽고 이장님을 찾아가니 최경기이장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신다. 마을 소개 글을 쓰려고 찾아 왔다하니 마을 내력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신다. 

#해동성국(海東聖國 宋子) 우암 송시열의 숨결이 느껴지는 선비의 마을
우리 마을은 예부터 효자 충신이 많은 마을이랍니다. 효자 못이 있을 정도로 효자들이 많았구요. 나라를 위하는 충신들이 많이 있었지요. 아마도 마을 유래비에 쓰여 있는 김쉬라는 부자의 군량미 헌납내용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사실 보은은 옛 부터 역사적 인물들이 나라의 전환기가 있을 때 마다 찾아보는 지역이었다. 고려 태조 왕건, 후백제의 견훤, 조선의 세조와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등 그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인의 영수 중 중진이었던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5촌 당숙이며, 송시열이 6군자로 칭했던 대곡(大谷)성운(成運)과 그의 제자이며, 보은 삼산에서 살았던 윤휴의 외할아버지 김덕민, 송시열과 속리산 복천사에서 3일 동안 성리학을 논했던 윤휴, 당시 송시열이 10살 위였는데, 30년 나의 독서가 참으로 가소롭게 느껴졌다고 자탄한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송시열은 해동성국 송자라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성리학의 대가 였고, 사림의 영수였던 인물이다. 조광조와 함께 기묘6명현으로 통하는 김정, 그리고 동·서인들의 주자학 논쟁에서 비교적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자신의 이론을 세웠던 보은현감 장현관, 보은서원을 세워 전국 두 번째로 사액을 받을 정도로 지방향약에 공헌이 있는 보은현감 성제원, 이이의 학풍을 따라 기호지방에 큰 영향을 주었던 대표향약인 보은향약을 만든 보은현감 김홍득, 보은향약은 농민들의 유랑을 방지하고 권농을 강조하여 상부상조하는 농업공동체적인 향규를 권장했다. 또한 부세의 지나친 부담을 줄이고 향족, 향리들의 무례한 침탈을 방지하고자했던 모범적인 향약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영향은 지금도 동계라는 형태로 내려오고 있다.    

#고속도로 IC가 인근에 있고 시골이지만 보은읍 시장이 가까워 생활이 편리한 마을   
지산리는 명당터에 자리잡다보니 옛 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땅이었다. 수정리에서 숙고개를 넘어 지산리로 이어지는데, 숙고개에 있는 박삼길의 묘비명을 송시열이 써줬고 김수온 부조묘를 지산으로 이전 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는 땅이 지산이다. 산림의 영수 우암송시열의 사랑을 받은 지산리는 지금도 귀농·귀촌 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마을이다. 고속도로 IC가 인근에 있어 전국 어디를 가든 교통이 편리하다. 운둔 형 시골이지만 보은읍 시장이 2분 거리에 있을 정도로 가까워 전원생활이 편리한 마을이다. 마을지세가 회룡고조(回龍顧祖)라고 할 정도로 명당을 가지고 있고 동남향으로 마을을 이루고 있어 전원생활을 준비하는 도시인들이라면 한번 쯤 찾아보는 마을이다. 최경기이장님으로부터 지산2리 마을소개를 받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내려오는데, 석양에 비친 고용골(수목골)을 보니 마치 용 한 마리가 비상을 준비하는 듯  한 모습이다. 마을을 나와 필자의 발걸음을 효자 못으로 향하는데, 연못에는 낚시 객들이 세월을 낚고 있다. 이곳 효자 못은 일 년 내내 낚시 객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 있는 낚시인들의 천국이다.     
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장고개 왕소나무.
지산2리 마을전경. 지산2리는 천곡리(泉谷里), 두지리(斗之里), 홍계리(洪介里), 개경리(開慶里)를 통폐합하여 지산리(芝山里)라 했다.
지산2리 효자못.
지산2리 효자못.
지산리 비석거리.
마을유래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