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회인면 눌곡리 향약비석
(34)회인면 눌곡리 향약비석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2.02 09:24
  • 호수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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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으로 조화로운 마을공동체를 만든 눌곡리
회인면 눌곡리 향약 비석. 현대사회에 맞도록 향약을 만들어 한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전통마을을 지켜나가고 있다.
회인면 눌곡리 향약 비석. 현대사회에 맞도록 향약을 만들어 한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어 전통마을을 지켜나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6.25동란을 거치면서 점차 쇠퇴했던 향약(鄕約)이 개인주의 사회로 급격히 변하면서 이제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향약(鄕約)이라는 자치 법규를 만들어 서로 자중하고, 서로 돕고 사는 한 가족 같은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 왔다. 이번 주 우리 동네 문화유산에서는'향약'을 주제로 하고 지금도 현대사회에 맞는 향약을 만들어 지키고 있는 회인면 눌곡리를 찾았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영해박씨 목사공파의 충립공이 피난 와서 정착하여 한때는 120호의 영해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눌곡리는 옛날에 회인군 읍내면 지역으로, 마을에 별학소(別鶴沼)라는 연못이 있어 늪실 또는 눌곡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황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눌곡리라 하고 회인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별학소는 없어졌지만 메웠다가 젊은이 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 복원한 세심지(洗心池)를 보호하고 있다.
넓은 의미로 향규(鄕規), 주현향약(州縣鄕約), 동계(洞契), 촌계(村契)로도 불리는 향약(鄕約)은 고려 태조의 사심관(事審官)제도를 처음으로 보기도 하지만, 조선 중종 때 조광조를 위시한 사림파의 주장으로 송나라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의 덕업상권(德業相勸), 과실상규(過失相規), 예속상교(禮俗相交), 환난상휼(患難相恤)을 근간으로 만들어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고을에는 이율곡이 만든 서원향약에 따라 조선 영조 23년(1747) 보은군수 김홍득(金弘得)이 보은군에서 실시한 주현향약이 대표적이었다면, 마을에는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자치규약인 촌계가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자생적으로 생겨나 1938년 조선총독부의 자료에 의하면 480종류에 2만9천257개의 촌계가 있었을 정도로 보편화 되었다. 촌계에서는 마을의 산신제, 두레, 도정(淘井), 병약자 보호, 혼인과 초상 지원등 상부상조로 마을을 정으로 묶어 주고, 질서유지를 위해 권선징악을 실시해 한 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눌곡리의 향약은 현대사회에 맞도록 '옛 모습을 최대한 보존, 복원하여 전통마을을 유지한다' '전통과 청정을 바탕으로 마을 공동사업과 기금 조성을 통해 고르게 잘 사는 마을을 만든다' '주거 의료 보건 교통 교육 문화 등 삶의 각 분야별로 마을 자체의 복지체계를 만들어 서로 돕고 웃으며 살아가는 행복마을을 만든다' '마을의 모든 일은 주민들의 뜻에 따라 민주적으로 정하고, 주민들은 정해진 마을 일에 개인의 이해관계를 떠나 최대한 참여 한다'는 향약을 만들어 전통마을을 지켜 나가고 있다. 
영해 박씨 후손인 박근수(89) 어르신은 "마을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향약을 만들어 비를 세우고, 열심히 지키고 있어 가족 같은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하며 자랑이 대단 하시다. 
눌곡리 뿐만 아니라 모든 마을이 자신에 맞는 향약을 만들어 서로 지키고, 서로 돕는 행복하고 살맛나는 우리의 보은을 꿈꾸어 본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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