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보은읍 수정리, 마을 공터에 현대적 감각으로 잘 조성된 쉼터가 있는 수정리
(26)보은읍 수정리, 마을 공터에 현대적 감각으로 잘 조성된 쉼터가 있는 수정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1.25 10:19
  • 호수 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은 왕재봉아래 조용한 마을 수정리를 소개하는 날이다. 수정리는 안수정과 구누고개로 이어지는 바깥수정 두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있다. 보은고등학교 남쪽 담을 따라 안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안수정은 맑고 큰 우물이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연산군시절 면천인(沔川人)박삼길의 묘비가 숙고개 마루에 있는 것으로 보아 1400년대에도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마을이다. 왕재봉을 찾아가는 길에 김순이(79)어르신을 만나 마을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지나가던 주민들이 한분 두분 오셔서 이야기들을 풀어 놓으신다. 이름 밝히길 수줍어하시는 70대 아주머니는 우리 마을중앙에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자나무가 있고 마을사람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쉼터가 자리하고 있다고 하신다. 그러고 보니 마을공터에는 현대적 감각으로 예쁘게 잘 조성된 쉼터가 보인다. 시대 흐름에 따라 시골 마을도 주민들의 취향대로 가는가 보다 시골마을 정자라고 해서 꼭 한옥 형 팔각정이여야 한다는 관념은 어쩌면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수정리 마을 주민들의 현대적 감각에 감탄했고, 다른 마을도 이렇게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 되어 있는 마을쉼터를 조성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바깥수정을 찾아 필자의 발걸음은 구누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안수정과 바깥수정을 이어주는 연육교 역할을 해주는 구누고개는 옛 길을 따라 조성되었는지 구불구불 정겹게 느껴진다. 
구누고개는 아홉 번 돌아서 넘는다고 해서 구누고개라 했다고 한다. 지금도 구비가 좁고 구불구불 옛 정취 그대로 정감이 있는 고개다. 요즘 새로 조성되는 시골길은 자동차가 다니기 편리하도록 넓고 직선도로가 대부분이지만 시골은 옛 길을 따라 포장을 했던 관계로 조상들의 숨결이 그대로 전해지는 길이 자주 보인다. 구누고개도 옛 조상들이 다니던 길을 그대로 확포장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 정겨운 모습이다. 이런 길을 다니다 보면 현대적 길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옛길을 보존하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구누고개 마루에 올라서니 경로당이 보인다. 고갯마루에 자리 잡은 수정리 경로당은 코로나로 인해 잠겨있고, 겨울바람만 필자를 맞아준다. 다시 바깥수정 마을회관을 찾아 걸어가는데, 마을 중앙으로 조성된 길은 옛 모습 그대로다. 조금은 불편해도 시골의 정취를 주는 이런 길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걷는데, 마을 회관마당에 어르신들 몇 분이 나와 계신다.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마을소개를 받고 싶다고 하니 마을의 옛 지명에 대해 말씀을 해주신다. 우리 마을 앞에 염성골이 라고 있었는데요. 그곳 우물물이 짠맛이 있어 그리 불렀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고 하신다. 그리고 마을 앞에 바가지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길에 포함되어 흔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물맛이 좋았었다고 하신다. 

#이방인의 방문을 낯설게 대하지 않고 가까운 이웃처럼 반갑게 대해주는 사람이 좋은 마을, 연산군의 난정(亂政)에 낙향하여 白扉 朴三吉 堂上官 碑文이 있는 마을   
어르신들과 마을이야기를 하는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는데, 지나가는 마을주민 한분이 우리 마을은 면천 박씨들이 많이 살았어요. 마을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박씨들에게 물어 보면 될 겁니다. 오늘은 면천 박씨 시재가 있는 날이라 박삼길묘각이 있는 재실에 모여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급히 어디론가 가신다. 백비 박삼길(白扉 朴三吉)은 면천(沔川.당진)사람으로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참판(吏曹參判)을 역임했는데, 연산군의 폭정을 보다 못해 병을 구실삼아 사직하고 낙향해 살았다는 분으로 수정리 면천 박씨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 받고 있는 분이다. 비문(碑文)에 의하면 연산군 시절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령경연사 관상감사 치사봉조하(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左議政 兼 領經筵事 觀象監事 致仕奉朝賀)라는 글귀가 있고, 연산난정(燕山亂政)에 칭병사직(稱病辭職)하고 귀향(歸鄕)하여 후학(後學)을 양성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역사적 난정을 피해 낙향하신 후 후학에 전념하신 것으로 추정된다. 해동성인 송자(海東聖人 宋子)라는 칭호를 받은 송시열이 비문을 써주실 정도로 백비 박삼길 당상관(白扉 朴三吉 堂上官)은 학문 또한 높으셨던 것 같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을을 둘러보는데, 마침 박기형(80세)어르신께서 마당에 나와 일을 하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마을소개 글을 쓰고 있는 양화용입니다. 수정리 마을소개를 받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하고 여쭈어 보니 제가 이곳에서 3대째 살고 있는 면천 박가입니다. 하신다. 그러면서 대문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필자를 보시고 집으로 들어와 차한잔 하시란다. 아~네! 감사합니다. 잠깐 인사를 나누고 생각하니 이것이 마을인심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수정리에서 만난 주민들 모두 이방인의 방문을 낯설게 대하지 않고 자주 만난 이웃처럼 반갑게 맞아주셨던 것 같다. 안 수정, 바깥수정 주민들 모두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고 아주머니 한분은 보은사람들 신문 잘 보고 있고, 남편분도 마을 소개 글 팬이라며 인사를 하신 분도 있었다. 아~! 그리 서있지 말고 들어와 차한잔 하세요. 하시면서 우리 수정마을은 예전부터 면천 박씨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이웃들 간에 다툼 없이 서로 서로 돕고 사는 조용한 마을이랍니다. 예전엔 주민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몇 집 없답니다. 요즘은 귀농·귀촌인 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는 마을이라고 하신다. 

#수정리 주민들은 성품이 온순하고 청빈하여 예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지금도 귀농 귀촌인들 사이에 살기 좋은 마을로 인기가 많은 마을이라고 한다. 
수정리는 마을 이름에서 보듯이 옛 부터 물이 좋기로 소문난 마을이고, 마을 좌향이  동남향에 연화부수형의 지형을 띄고 있는 마을로 귀농 귀촌을 꿈꾸는 분들이 선호하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현재도 바깥수정은 새롭게 이주한 분들이 많이 살고 있다. 마을을 나와 숙고개와 구누고개에 들러 백비 박삼길묘비를 살펴보고, 마을 자랑비를 둘러보는데, 안수정, 바깥수정, 중간말, 아랫말, 염성골 등의 마을과 잔대넘어, 강낭골, 구누고개, 귀경 골, 밤 고개, 범 의산, 쑥 고개, 잣 밭 버덩, 왕재봉등의 지명을 가지고 있는 마을로 문화유적으로 송시열이 지었다는 박삼길 묘비가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마을 지리는 너그러워 동네를 감싸 안고 주민들의 성품은 온순하고 청빈하여 예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을 가진 마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을 자랑비를 읽고 마을을 나서는데, 마을 앞 은사들엔 어느덧 초겨울 저녁노을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 
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아홉 번 돌아서 넘는다고 해서 구누고개. 옛 조상들이 다니던 길을 그대로 확포장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 정겨운 모습이다.
안수정과 구누고개로 이어지는 바깥수정 두 개의 마을로 이루어진 수정리의 전경모습이다. 
백비 박삼길(白扉 朴三吉)의 묘비. 면천 박씨들의 정신적 지주로 추앙 받고 있는 분이다. 
수정리 우시장의 모습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