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절자
변절자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1.25 09:44
  • 호수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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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고 매서운 바람이 분다.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비록 날씨는 눈이 내리고 대지도 얼어붙는 혹한을 예보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뜨겁게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타오른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농장 주변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하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잎을 모두 떨 구고 몸 안의 수분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나무들 사이로 그들의 푸르름은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예부터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불리는 이유를 오랜 시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변화무쌍한 세상살이의 소용돌이와 예측 불가능해 더욱 불안정한 미래의 모습에서 올곧은 신념과 사명을 지켜 내며 한 길을 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십여 년의 시간을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지켜봐 준 그들이 있어 힘이 솟는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20대 대선과 지방 자치선거가 가시권에 들어왔다. 지역에서도 벌써 나름의 목표를 향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하마평이 무성하다.
민주시민의 대리인으로 왕이 아닌 머슴이 될 사람, 지방정부의 군림하는 군주가 아닌 일꾼이 될 사람을 제대로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눈여겨봐야 할 것이 선거철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정치꾼들과 변절자들의 면면이다. 가까이서 지켜본 그들의 행태는 최소한의 염치와 양심도 없는 철면피들이다. 그들의 변신은 늘 화려하고 요란하다. 변절의 이유는 궁색하고 구차하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드는 격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하는 후보 또한 같은 부류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는 지역 발전의 비전이나 지역민들의 행복한 미래를 담보할 어떤 대책이나 전략도 없다. 정치꾼들과 변절자들을 끌어모아 오직 자신의 자리보전과 영달만을 위해 내 달린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달콤한 조건이나 보상이 제시되면 신의와 명예는 헌신짝처럼 버린다. 늘 양지만을 쫓아다닌다. 의로운 것보다 이로운 것이 먼저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에서도 변절자들이 끼친 해악은 차고 넘친다. 불과 백여 년 전부터의 역사만 봐도 그렇다.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은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한 후 은신하며 동지들과 재봉기를 모의하던 중 부하였던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되어 그 뜻을 다시 펼치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는 변절자의 실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역사의 거울이다. 기미년 독립 선언서에 서명했던 민족 대표 33인 중에도 변절자가 많았다. 안중근 의사와 단지 동맹으로 독립 의지를 다졌던 동지도 변절했고 독립운동 단체와 독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한 항일 운동에 적극 가담했던 인사들 중에도 앞장서서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반민족, 친일의 첨병이 되기를 자처한 자들이 넘쳐났다. 그들은 광복이 된 후, 자신들의 행위를 두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 줬다. “일제가 그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 한 200년 갈 줄 알았다"라고 한 미당 서정주(다츠시로 시즈오)나 자신의 친일은 “부득이 민족을 위해 한 것이다"라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은 춘원 이광수(가야마 미쓰로)가 대표적이다.
얼마나 변절자들에게 치가 떨렸으면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한 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 변절자'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라고 하셨을까.
공정한 사회 속에서 자유와 평등과 평화가 꽃피는 나라를 만드는 것도, 열심히 일하면서 살맛 나고 신명 나는 지역을 일궈내는 것도 모두 사람의 일이다. 멀리 가지 않고 널리 보지 않아도 변절의 독버섯은 스멀스멀 움트고 있다. 귀를 닫아도 들리고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은 그들이 구린내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을 오염시키고 퇴색시키는 내 주변의 정치꾼들과 변절자를 멀리하자. 그들을 이용해 뭔가를 이루려는 자들을 가려내자. 소나무는 한 번 베어버리면 다시는 움이 나지 않는다. 대나무는 일생에 한 번 꽃을 피우고는 말라 죽는다. 차라리 꺾일   지라도 비굴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고집이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지켜야 할 기본 가치를 일깨워 준다. 소나무와 대나무를 닮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은 계절이다.

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강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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