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보은읍 신함리, 서로 돕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정신이 깊은 마을
(25) 보은읍 신함리, 서로 돕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정신이 깊은 마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1.18 09:51
  • 호수 6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은읍 북쪽 4km지점에 있는 신함리는 150년 전 북실(종곡리)에서 살던 경주 김씨 일가 들이 이주하여 새롭게 터를 잡았고, 구함리(舊含里)와 감동리(甘東里)를 통합하여 원신함1리 감동리는2리로 하여 신(새)함리 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매봉산을 뒤로하고 터를 잡은 신함리 사람들은 온순하고 부지런하며, 관기의 신분으로 남편의 뒤를 따라 순절한 열녀와 환난상휼(患難相恤)의 정신이 깊은 마을이다. 
열녀 옥랑의 전설이 깃든 신함리를 소개한다. 동안들 동쪽 장군봉 아래 20여 가구가 옹기종기 아름답게 사는 신함리는 장군봉이 있는 매봉산을 주산으로 하고 장군대좌혈(將軍對坐穴)을 가지고 있는 길지(吉地)로 장군이 태어날 명당이라고 한다. 
신함1리를 찾아가는 길은 평원들이나 동안이 들을 가로질러 가야하는데, 여기저기 추수에 여념 없는 동안이 들은 년 중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듯하다. 
신함1리는 귀농·귀촌 하는 사람들 속에 인기가 많은 동내로 매물이 나오기 바쁘게 거래가 성사되고 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용인에서 살다 보은으로 귀농하기 위해 얼마 전 집을 구입했다는 이성영(65세)씨는 아직은 낮 설은 환경에 주민들과 교류가 많지 않아 서먹하긴 하지만 마을 분들이 친절하게 농촌사회에 대한 관습들을 이것저것 가리켜 주어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코로나로 마을회관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으니 마을소식 듣기도 힘들어 이장님을 자주 찾아가 자문을 구한다는 이성영씨는 보은에서 농사를 지을 생각이고, 이주준비가 끝나면 가족들도 모두 이주할 계획이라고 한다. 

#장군이 태어날 자리를 가지고 있는 신함리는 지금도 외지에서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마을
마을 풍경을 돌아보며 사진 몇 장을 찍고 있으니 주민 한분이 다가오신다.  누구신데 사진을 찍는냐고 물어 보신다. 마을 소개 글을 쓰고 있는 양화용이라고 소개를 하니, "보은사람들 신문에 마을소개 글을 쓰시는 분이군요?"하며 필자를 알아보시는지 반갑게 인사를 하신다. 
"신함에 오래 사셨나요?"하며 마을 소개를 부탁하니, 한 60년은 살 은 것 같은데, 우리 마을은 크게 자랑할 것은 없고 예전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길 우리 마을은 종곡에서 이주한 경주김씨, 영해박씨, 김해허씨 들이 터를 잡아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숭상하며 살았고, 구함림 과 새함림이 통폐합 되어 지금의 신함이 됐다고 하더라구요. 특히 우리 마을 뒤산에 장군봉이라고 있는데, 장군이 태어날 자리라고 해서 그리 불렀다고 합니다. 끝내 이름을 밝히지 않으신 주민은 많은 소식을 들려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어둔이(마을안)골짜기 쪽으로 올라가신다. 마을주민과 해어지고 회관으로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노래 소리가 들린다. 
음악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가니 염상님(77)어르신이 라디오를 틀어 놓고 마당에 널어놓은 엿기름(밀 또는 보리 싹을 틔워 말린 것)을 뒤적이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혹시 이 마을에서 오래 사셨나요?"하고 물으니 "21살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나요?" "마을 소개 글을 쓰는데, 혹시 예전하고 지금하고 어떤 변화가 있는지 말씀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하고 필자가 질문을 던지니 "우리 마을은 크게 변한 것은 없고, 마을위에 바가지 샘이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답니다. 그리고 비재 못 옆에 열녀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춧돌만 있답니다." 아마도 옥랑정문(玉琅精門)을 말씀하시나 보다. 옥랑정문은 관기(官妓)였던 옥랑이 남편이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절개를 지켰다는 전설을 간직한 열녀문인데, 지금은 무너지고 정문을 세울 때 놓았던 주춧돌만 있다. 연상님 어르신과 헤어지고 서낭당을 지나 배제 못 인근에 있는 정문자리를 찾아가니 주춧돌 4개만 쓸쓸히 남아 있다. 사람의 손길이 오랫동안 없었는지 주춧돌은 방치되어있고 누군가 위치를 바꾸어 놓은 듯 뒤틀려 있었다. 열녀문의 의미가 어찌되었든 한때는 나라에서 인정한 역사적 흔적이니 후손들이 잘 보존하고 관리하여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옥랑의 정문을 뒤로하고 함림2리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신함2리는 환난상휼(患難相恤)을 실천한 휼재 박성래이장령덕비(恤齋 朴成來里長領德碑)가 있는 마을로 이웃 간에 상부상조를 미덕으로 삶는 마을
신함2리 경로당은 가을걷이와 코로나로 인해 굳게 잠겨있고 마을 자랑비만 웅장하게 서있다. 마을 자랑비 옆에 휼재 박성래이장령덕비(恤齋 朴成來里長領德碑)가 세워져 있다. 영덕비(領德碑)의 내용을 살펴보니 일제 강점기 공출명령이 떨어졌는데, 마을사람들의 어려움을 헤아린 박성래님이 마을사람들의 공출부담을 덜어드리고자 자신의 소를 공출했다는 내용이다. 1940년대 초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군량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조선에 총동원령을 내렸을 당시 각 마을마다 강제적으로 공출을 했다고 한다. 당시 많은 곳에서 주민들에게 무력을 사용하여 수탈했지만 신함리는 이장님이 주민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자신의 소를 공출했는가 보다. 소는 지금도 재산의 일부이지만, 1940년대 당시는 이장님 재산의 전부였을 것 같은 소를 마을주민들을 위해 기꺼이 내놓은 휼재 박성래이장님 같은 분들이 진정한 환난상휼(患難相恤)을 실천한 마을 봉사자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신함리는 서낭당과 산신동제단이 있고, 타인을 배려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
마을 자랑비를 읽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신기한 대문하나가 보인다. 어릴 적 어른들이 봄이 오면 입춘첩을 써서 대문이나 대들보, 외양간 등에 붙이는 것은 보았는데, 대문기둥에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라고 석문형태로 음각 되어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입춘첩은 대부분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나,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국태민안 시화연풍(國泰民安 時和年풍)을 써서 붙이는 줄만 알았는데,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땅을 쓸 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귀가 있는 줄은 몰랐다. 글귀가 아름다운 대문의 집주인은 아마도 오고가는 나그네들이 사시사철 마음의 부자가 되라는 뜻으로 써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문 글을 뒤로하고, 마을 회관 쪽으로 내려오는데, 신기하게도 피로감이 풀리고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아마도 조금 전 보았던 소원 글 때문인가 보다. 내가 마치 황금을 가진 부자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들며,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집주인이 세상에 던진 소원 글의 의미가 바로 이것 이었나보다. 누구든 자신의 집 대문을 보고 마음의 부자가 되어 상부상조하라는 뜻으로 대문기둥에 소지황금출 개문만복래(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를 음각했는가 보다. 마을을 나서는데, 저녁노을에 비친 서낭당 돌탑과 산신동제단(山神洞祭壇)이 나그네의 안녕을 빌어주는 듯하다. 
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는 풍경이지만 신함1리 마을 입구에 있는 산신단과 서낭단이 있다.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는 풍경이지만 신함1리 마을 입구에 있는 산신단과 서낭단이 있다.
150년 전 북실에서 살던 경주 김씨 일가들이 이주해 터를 잡았고, 구함리와 감동리를 통합해 원신함1리 감동리는2리로 하여 신(새)함리 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150년 전 북실에서 살던 경주 김씨 일가들이 이주해 터를 잡았고, 구함리와 감동리를 통합해 원신함1리 감동리는2리로 하여 신(새)함리 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옥랑정문은 관기였던 옥랑이 남편이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절개를 지켰다는 전설을 간진한 열녀문인데, 지금은 무너지고 정문을 세울 때 놓았던 주춧돌만 있다.
옥랑정문은 관기였던 옥랑이 남편이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고 절개를 지켰다는 전설을 간진한 열녀문인데, 지금은 무너지고 정문을 세울 때 놓았던 주춧돌만 있다.
마을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신함1리 마을회관의 모습이다.
마을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신함1리 마을회관의 모습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