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무렵
입동 무렵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1.18 09:21
  • 호수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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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입동 무렵이다. 다른 계절은 몰라도 꽁꽁 얼어붙는 겨울은 겨울나기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김장을 해야 하고, 메주를 쒀야하고, 쌀도 보일러 기름도 넉넉히 준비해야한다. 그 중에서 제일 힘든 건 김장이 아닐까 한다.
올해는 배추 심은 게 뿌리가 썩고 잎이 마르는 바람에 서둘러 김장을 담갔다. 썩은 게 많아서 우리 배추를 담고도 모자라 배추를 30포기 더 사서 두 번째 김장을 했다. 그리고 여기저기 알타리 무를 많이 심어 놓아서 세 번째로 알타리로 김장을 했다. 그렇게 세 번의 주말을 김장을 하며 바쁘게 보냈다.
이제 메주를 쑤고 청국장을 띄울 일만 남았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옛사람인가 보다. 사먹어도 될 일을 굳이 힘들여 하고 있다. 김치도 그렇고 된장도 그렇고 고추장도 청국장도 직접 만들어 먹는다. 그래야 고유의 맛이 나고 어릴 적 입맛그대로를 느낄 수 있다. 사먹는 것에는 뭔가 손맛이 없어서 그런지 부족한 것이 느껴진다.
어릴 적 겨울 준비가 생각난다. 엄마들은 개울에서 배추를 씻어 서로의 김장을 도와주곤 했다. 마루의 양지바른 곳에선 곳감이 말라갔다. 말랑말랑한 덜 마른 곳감을 따먹으면 얼마나 달콤하던지. 
안방 윗목엔 고구마퉁가리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부엌 한쪽 큰 단지엔 무와 배추를 썰어서 담근 마구짠지가 익어가곤 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배추포기 김치가 아닌 그 마구짠지가 한 사발씩 상에 오르곤 했다. 고춧가루가 덜 들어간 그 짠지는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삶은 고구마와 함께 먹던 살얼음 낀 동치미는 얼마나 시원했던가. 
아버지는 우리들의 따듯한 겨울을 위해 산으로 산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그때엔 모두 땔감을 산에서 구했기 때문에 땔감이 귀했는지 나뭇잎까지도 긁어모아 땔감으로 쓰곤 했다. 징용 때 고문으로 늘 아픈 몸이었지만, 기운이 장사였던 아버지의 나뭇지게는 남들보다 훨씬 커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새벽 무렵 등이 뜨듯해질 때면 쿨럭쿨럭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오곤 했다. 식은 방을 데우고 아침에 밥하고 세수할 물을 데우고 계셨던 것이다. 과묵하신 아버지의 따듯한 사람이 등을 타고 마음 속 깊숙이 전해져 오곤 했다. 
길가 집이었던 우리 집은 겨울엔 마실꾼들이 넘쳐났다. 장화홍련전 같은 옛날 이야기책을 호롱불 밑에서 마실꾼들에게 읽어주던 구성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이야기책이 없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긴긴 겨울밤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마실꾼들과 함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외할머니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자곤 했다. 내가 시인으로 사는 바탕에는 어쩌면 어릴적 들었던 그 옛날이야기의 정서가 스며있는지 모를 일이다.
가을걷이 끝내고 팥시루 떡을 만들어 가을 떡을 이집 저집 나누어 주러 다니던 그때의 어린 나는 얼마나 신이 났던가.
보고 느끼고 즐기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내가 직접 준비해야 하는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들이 했던 그 수고가 얼마나 힘들고 값진 일이었는지 직접 김장을 담그며 느낀다. 무엇이든 귀했던 그 시절이 아닌가. 그래도 나눔만큼은 풍족한 지금보다 더 했지 싶다. 무엇이든 있으면 이웃과 함께 나누곤 했다.
김장을 담가 아이 셋 나누어주고, 오빠와 김장을 잘 못하는 막내 동생도 나누어주고, 서울에 사는 거동이 불편한 시인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고구마 심은 것도 두어 상자 준비해 두었다. 
이제 메주를 쑤고 나면 겨울채비는 끝난다. 옛날 이야기해줄 외할머니가 없으니 책을 몇 권사서 옛날 속으로 들어가 볼일이다.
쿨럭쿨럭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벌겋게 언 손으로 많은 식구의 음식을 준비하던 엄마가, 부지런한 외할머니의 굽은 등이, 두꺼운 목화솜 이불을 서로 덮겠다고 잡아 당기던 어린 동생들이, 그리운, 그리운, 입동 무렵이다.

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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