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내북면 아곡리 방앗간
(31)내북면 아곡리 방앗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1.11 09:30
  • 호수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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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엔진으로 방아를 찧던 용수정미소
버스의 중고 엔진을 사용해 방아를 찧어 흰쌀밥을 제공했던 내북면 아곡리 아치실에 있는 용수정미소의 모습이다.
버스의 중고 엔진을 사용해 방아를 찧어 흰쌀밥을 제공했던 내북면 아곡리 아치실에 있는 용수정미소의 모습이다.

며칠 전까지도 누렇던 황금들판이 1930년대에 미국에서 개발되어 보급된 콤바인 덕분에 자고나니 하얀 백설기 떡시루로 변한 요즈음, 방앗간이 바쁜 계절이 되었다. 지금은 방앗간을 정미소(精米所), 도정공장(搗精工場), 미곡처리장으로 불리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감 가는 호칭은 「방앗간」이 아닌가 싶다.
보은에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정부 양곡을 가공하는 대형방앗간이 있었고, 6.25 전쟁 후에는 동네마다 크고 작은 방앗간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방아를 찧는 동력 또한 사람의 힘으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전기모터로 변하는 과정 속에 중고 버스엔진을 사용하는 방앗간 까지 생겨났다. 이번 주'우리 동네 문화유산'에서는 방앗간을 주제로 하고 버스엔진을 사용하여 방아를 찧던 내북면 아곡리 아치실에 있는'용수정미소'를 찾았다. 
아치실은 120년 전까지만 하여도 청산군(현 청산면) 소속으로 월경지역이었다가 1906년 보은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회인군 동면 신흥동 일부를 병합하여 아곡리 라 하고 내북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니 ?'라는 옛말이 있듯이 풍요를 상징하는 방앗간은 태초부터 인류의 역사와 함께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우리가 지금도 볼 수 있는 것만 하여도 절구통으로 부터 시작하여 어머니들이 발로 밟아 찧던 디딜방아, 소나 말을 메어 끌던 연자방아, 시골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던 물레방앗간, 힘센 청년들이 코를 누르고 손잡이를 돌려 시동을 걸던 발동기 방앗간, 버스의 중고 엔진으로 방아를 찧던 엔진방앗간까지 생겨나 우리에게 맛있는 흰 쌀밥을 먹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스위치만 누르면 괴력으로 웅장한 방앗간을 움직이는 전기모터의 현대식 방앗간 RPC 도정공장이 생겨나 다른 방앗간들은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 아치실의 용수정미소 역시 2006년까지만 하여도 방앗간 앞마당에는 탈곡한 벼 가마를 잔뜩 실은 구르마와 경운기들이 길게 들어서 있고, 버스엔진의 웅 웅 소리 속에 아치실은 물론 인근 사람들까지 모여 막걸리를 한잔씩 나누며  올해의 농사 얘기로 왁자지껄하던 또 하나의 사랑방이었으나, 오늘의 용수정미소 주위는 근대민속촌이 되어 버렸다.
현 소유주인 이정희(70) 어르신의 전언에 따르면 용수정미소는 선친이 발동기를 버스엔진으로 바꾸어 운영하시다가 물려받은 방앗간으로 발동기는 힘센 청년둘이 있어야 시동을 걸 수 있는데 비해 시동이 편하고, 외부에 에어클리너와 매연 배출구가 있어 좋았다고 하신다. 내부는 아직도 스위치만 넣으면 윙윙 돌아갈 것 같은데 지붕이 망가져 파란 하늘이 보이는 버스엔진의 용수정미소를 근대 문화유산으로 남길 수는 없는 것일까 ?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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