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시
비도시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1.04 11:03
  • 호수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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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을 좀 더 품고 있는 곳은 도시보다 비도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도시가 보통의 월급쟁이 생활로 평생 돈을 벌어도 집 한 채 살 수 없는 곳이라면 말입니다. 서울이 대표적이고 세종시가 이를 추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그럴싸한 표현이 종종 언론의 자유와 같은 수준의 표현처럼 여겨집니다. 내용을 감추기 위해 포장만 그럴듯하게 감싼 것 같습니다. 팩트 체크도 없이 의혹이라며 거짓 사실을 특종으로 내세우는 언론이나 비정상적인 집값을 두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니 당연하게 여기라는 것이 별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는 불로소득이고 투기이며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거짓 선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은 정해져 있습니다.
땅이 너무 비싸서, 집이 너무 비싸서 구하기도 어렵고 이사도 어려운 상황은 무척 불안한 상황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불안하면 분노하게 되고 이를 표출합니다. 모두가 온전히 누려야 거주에 대한 안전망은 극소수의 자본이 대부분의 토지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독점하는 구조 밑에서는 보장되지 않음을 알면서도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향합니다. 이렇다보니 돈이 최고이고 과정은 나중입니다. 땅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공유하려 하기 보다는 어떻게든 땅과 건물 소유자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합니다. 물질이 상위의 가치가 되니 초등학생 자녀가 고등학교 문제집을 풀길 바랍니다. 그런 곳에서 인간다움이 자리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도시에 미래가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다움이 있어야 지구를 구하지 않겠습니까. 비교적 집의 소유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물질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으나 마음이 풍족한, 도시의 식량을 책임지고 있는 그런 곳 말이죠. 우리 마을 보은 또한 주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정치를 한다면 커다란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 믿습니다.
또 아등바등하며 살고 싶지는 않으니 촌락이 좋습니다. 열심히 벌어 은행에 바치는 삶은 지금 수준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다보니 시골의 작은 학교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인간다움이 남아있는 마을의 생명력을 쥐고 있는 작은 학교. 아이들이 아이답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작은 공간들이 소중해보입니다. 하지만 불씨는 점점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과연 5년쯤 뒤에 몇 개의 학교가 남아있을지, 학교가 사라진 마을은 어떠할지 불안하게 궁금합니다. 불씨를 살리고자 의식하고 장작을 구하지 않는 곳은 자연스럽게 꺼지겠지요.
반대로 최근 불씨를 살리는 학교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역시 집입니다. 거주에 대한 불안함을 해소해준다는 것은 그만큼 위력이 있나 봅니다. 학교는 교육 외에도 주택을 제공하기 시작했고 흥행을 했으며 이제는 학교 살리기의 기본 조건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미담이 들리기도, 흉흉한 이야기가 들리기도 합니다. 새로운 흐름이 유입되어 교육공동체가 생겨났다는 마을이 있는 반면 기존에 거주하던 사람들과 편이 갈려 마찰을 빚고 있다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집이라는 물리적 결합보다 사람간의 화학적 결합이 더 어려울 수 있겠죠. 이 화학적 결합에 있어 학교가 중심을 잡고 있느냐의 여부가 무척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집의 제공에 이어 한 가지의 양념이 더 추가되는 사례가 나올 순서입니다. 2006년 즈음 경기도에 위치한 남한산초등학교의 교육과정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학교로 몰려들었었죠.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집값을 자랑했던 타워팰리스를 팔고 학교 근처 월세 방으로 이사를 온 가정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곳에서 잠시 기간제로 근무했었기에 당시 일반적인 학교에는 흔치 않았던 것들을 기억합니다. 일체의 상을 주는 행위, 순서를 매기는 행위가 없었고 체험학습을 중시했으며 쉬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잦은 회의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교사로서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아이들은 어땠는지 꺼내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대부분의 교실은 시끌벅적했고 사람들은 수평적이었으며 매주 학생들 모두가 모이는 회의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학교가 왜 이런 행위들을 추구하고 이렇게 교육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지향과 스토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소프트웨어가 당연한 양념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가끔 그립습니다. 결국 이 또한 사람이 하는 것이더군요.

칼럼니스트  강 환 욱
보은교육협동조합 햇살마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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