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보은읍 학림리, 고려시대 경산부도 소속의 함림역이 있었던 유서 깊은 마을
(23)보은읍 학림리, 고려시대 경산부도 소속의 함림역이 있었던 유서 깊은 마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0.21 09:58
  • 호수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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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평원 위 보은읍 관문에 있는 학림리는 삼국시대 성(城)으로 전해지는 함림산성(含林山城) 아랫마을로 함림(含林) 마을로 불리었다. 
학림리(鶴林里)는 일제시대 토지 수탈의 목적으로 진행했던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무실(웅실), 구룡티(수철령), 북 바위, 성깔들, 평지 말, 화산 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이름을 가진 마을이 통폐합되어 오늘날 학림1리, 학림 2리로 나뉘어 있다. 
보은읍 관문에 있는 학림리는 삼국시대 쌓았다고 전해지는 함림산성(含林山城) 아랫마을이라고 해서 함림(含林) 마을로 불리었다고 한다. 특히 학림은 역참(驛站)제도가 있었던 고려 시대에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경산부도(京山府道) 소속의 함림역이 있었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마을 소개를 듣고자 이의백(61) 이장님 댁을 찾아가니 이장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신다. 인사를 하고 마을 소개를 듣고자 찾아왔다고 방문 목적을 말씀드리니 우리 마을은 50여 가구 120여 명이 살고 있으며, 주민의 70%가 귀농 귀촌하신 분들이라고 하신다. 
보은의 관문에 있는 학림리는 넓은 들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이며, 옻 샘으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주위에 오염원이 없고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풍부한 마을이다 보니 도시에서 은퇴하신 분들이 전원생활을 하는데, 적합한 마을로 우리 마을을 많이 선호하는 듯합니다. 
이장님께서 한참 마을 소개를 하시는데, "형님 머하고 계세요?" 하며 박영봉 님(58)이 들어온다. 마을 나들목에 있는 이장님 댁은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오며 가며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 역할도 함께 하는 듯하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여성분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손님이 오셨나 봐요?" 하며 필자가 궁금한 듯 물어보니, 아내 친구분들이 놀러 오셨다고 하신다. "인사를 드려도 될까요?"하고 여쭈어보니 흔쾌히 들어가 보라고 하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을 주민 몇 분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아이고! 어서 오세요. 오래간만이네요. 어찌 여기까지 오셨어요?" "아~! 네 마을 소개 글을 쓰는데, 이장님을 뵙고 인사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니 차 한잔하고 가라며 따뜻한 차 한잔을 내놓으신다. 따스한 찻잔에서 이장 내외분의 후덕한 인심이 가득 느껴진다.

#470년 동안 학림리를 지켜온 노거수가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평원 들녘만큼이나 넉넉한 인심을 나누며 사는 사람이 아름다운 마을
우리 마을은 지금도 옻 샘의 흔적이 있는 마을로 피부병에 좋다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간간이 찾아오고 있답니다. "아~! 여기 옻 샘이 있었나요?" 하며 필자도 처음 듣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어디쯤 샘이 있을까요?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지요?" "네 지금도 물이 나오고 있답니다." 박영봉 님의 마을 자랑이 대단하다. 
마을 자랑을 듣고 계시던 이장님께서 "나도 여름에 땀띠가 나고 피부 문제가 생기면 옻 샘으로 가서 씻고 오면 깨끗이 낫는답니다. 정말 신기할 정도라니까요." 
옻 샘이 궁금해진 필자는 서둘러 이장님과 작별을 하고 샘을 찾아 나서는데, 함림(含林) 들녘은 가을걷이가 한창이다. 콤바인 소리 들으며 옻 샘을 찾아 마을 길을 나서는데, 커다란 느티나무 하나가 보인다. 걸음을 멈추고 노거수를 살펴보는데, 나무를 소개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학림2리 마을 느티나무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고, 수령 약 470년, 나무 둘레 4.6미터, 높이 17미터로 1982년 지정되었다고 한다. 한참을 살펴보던 필자가 문득 "470년 전 함림역(含林驛) 입구에 심어진 느티나무는 조선 4대 사화 이후 임란과 양란 인조의 굴욕 등 수많은 정쟁과 민족 수난을 보며 살았을 것인데, 47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주시겠습니까?"하고 질문을 해본다. 
"1552년쯤은 명종을 대신해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과 을사사화로 골육상쟁을 벌였던 소윤과 대윤이 치열한 권력투쟁을 했고, 그 여파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보은현은 시류를 피해 낙향하는 선비들이 많았던 지역으로 함림역(含林驛)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오고 가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쉼터 역할을 했다."라고 말해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모진 풍파를 잘 견디고 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나무라 생각하니 더욱 애정이 가는 듯하다.

#아름다운 마당을 가진 학림 사람들은 땀띠나 피부 문제가 생기면 옻 샘으로 달려가 등목을 했다. 옻 샘은 지금도 구전으로 전해 오는 효능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느티나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나무 옆 아담한 이층집이 보인다. 잔디가 예쁘게 깔린 마당이 아름다운 이층집은 이름 모를 꽃들이 심겨 있고, 가을을 즐기는 듯 꽃향기가 나그네의 감성을 자극한다. 사진 몇 장 찍고 옻 샘을 찾아 발길을 다시 옮기는데, 종곡(북실)으로 넘어가는 가파른 고갯길은 나그네의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한참을 오르다 보니 고개중턱 작은 골짜기 아래 옻 샘이 보인다. 누군가 돌탑을 쌓아 놓았고, 지금도 사용하는지 사람의 흔적이 보인다. 두 손 가득 물을 담아 한 모금 머금으니 달달하고 시원한 용천수(龍泉水)가 온몸에 퍼져나가는 듯 시원함이 감돈다. 옻과 피부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을 간직한 샘이라는 것이 과장 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전설을 품고 있는 학림리는 귀농·귀촌하시는 분들이 선호하는 살기 좋은 마을
옻샘을 뒤로하고 마을 유래비를 찾아 돌아 나오는 길에 신안수(75) 전 이장님 대추밭에 들러보는데, 많은 분이 대추 수확에 한창이다. 대추와 고추 등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는 신안수 전 이장님의 대추밭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당도가 높고 주위에 오염원이 없어 청정대추로 유명하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신안수님의 대추는 지금도 많은 분이 찾고 있다고 한다.

대추 작황을 여쭤보니 예년보다 수확량은 많은데, 코로나로 인해 판로가 걱정된다고 하신다. 농민들 공통적인 문제가 판로가 걱정인 듯하다. 농민들이 판로 걱정 없이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을 유래비를 살펴보는데, 지금의 학림(鶴林)은 본래 함림산성 아랫마을이 있어 함림(含林)으로 불리었다가 조선 시대에 율봉도(栗峯道) 찰방(察訪)이 관할하는 대마(大馬) 2필, 기마(騎馬) 3필, 복마(卜馬) 5필, 역리(驛吏) 30명, 노(奴) 40명을 거느린 큰 역으로 국가의 교통과 통신 등에 큰 역할을 했던 유서 깊은 마을이라고 쓰여 있다. 1914년 마을 통폐합을 할 당시 숲속에 두루미가 많이 살고 있어 학림리(鶴林里)로 이름 짓고 보은읍에 편입되었다고 쓰여 있다. 마을은 지금도 많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마을 뒷산은 북 바위 전설이 있고, 용의 전설이 있는 구룡터(대바위)가 있고, 고무실(웅실)에 내려오는 곰의 전설은 우직한 학림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알려 준다고 한다. 마을을 나서며 대바위에 있는 충혼비에 들러 국민방위군, 의용 경찰들 등 영령들의 안녕을 빌고,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군민방위 군과 의용 경찰의 전적을 찾아 보은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로 삼고자 한다는 전적비를 읽으며 이념의 갈등으로 인해 꽃다운 청춘을 희생한 영령들의 통일 염원이 꼭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면서 학림리 마을 소개를 마무리한다.
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국민방위군 의용경찰 전적기념비
학림 마을회관
옻 샘
학림 느티나무. 정자와 운동기구 등이 설치돼 주민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학림 마을전경
학림리 대바위의 모습이다. 국도가 확장 개설되면서 주변에 있던 대바위가 많이 없어졌지만 남아있는 대바위가 이곳이 대바위였음을 증거처럼 보여주고 있다.
학림 마을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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