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보는 사람, 나무를 보는 사람
숲을 보는 사람, 나무를 보는 사람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10.21 09:22
  • 호수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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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가까이에 있는, 내가 가끔 산책을 하는 농로 옆에 있는 인삼밭에 인삼을 캐가고, 사람들이 하나 둘 인삼 이삭을 줍고 있었다. 나도 한번? 침이 꿀꺽 넘어갔다. 출근을 하니 시간은 없고, 퇴근을 하면 날이 금방 어두워진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책보는 시간을 줄여보기로 했다.
보통 나는 새벽 5시면 일어난다. 일어나서 명상 10분쯤하고, 스트레칭 조금하고, 녹차 우려마시며 책을 본다. 한 시간은 인문학 책을, 한 시간은 시집이나 동시집을 본다. 그리곤 출근 준비를 한다. 그런데 한 시간을 쪼개서 인삼 이삭을 주우러 나갔다. 어느 게 더 의미 있는 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조금 걸어서 인삼밭에 갔더니 처음엔 도저히 인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리저리 살피며 잔뿌리를 줍는데, 잔뿌리를 잡아당기면 큰 뿌리가 따라 나오기도 했다. 보물을 찾은 것처럼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인삼밭은 꽤 넓었다. 그것을 샅샅이 보기란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한 골을 타고 옆에 있는 골을 함께 보며 나갔다. 한 번에 세 골을 볼 수 있는 셈이다. 
첫날은 한 시간 가량 주웠는데 한 움큼 가량 주웠다. 다음날 아침에도 비닐봉지를 들고 나갔다. 요령이 생겨서인지 다음 날은 두 배쯤은 더 주은 거 같다. 그리고 비가 왔다. 비 온 다음날 나갔더니, 흙이 가라앉으며 숨어있던 잔뿌리들이 여기저기 허옇게 드러났다. 눈에 잘 뜨여 줍기는 수월한데 장화에 흙이 달라붙어 곤혹스러웠다. 그렇게 나흘쯤 인삼 이삭을 주웠고, 겨우내 인삼 잔뿌리와 대추를 넣고 끓여서 따듯한 겨울을 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은 그 까짓 거 십만 원어치만 사면 될 걸 괜한 고생을 한다고 했지만, 가끔 나오는 잔뿌리 속의 큰 뿌리를 생각하면, 그 줍는 재미 또한 쏠쏠 했다. 어디서 그 짜릿함을 맛보랴?
인삼 이삭을 주우면서 보니 호미로 여기저기 파면서 이삭을 주운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 흙속에 묻혀있는 큰 인삼도 있겠지만, 그렇게 넓은 밭을 다 호미로 헤집을 수는 없으리라. 그 사람은 분명 눈앞의 나무를 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멀리를 내다보며 전체 밭을 다 훑었으니 숲을 보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언젠가 MBTI 교육을 받고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숲을 보는 사람이고 남편은 나무를 보는 사람으로 나왔다. 나는 문제를 깊게 생각한다. 이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너무 깊게 생각하다 보니 기회를 놓칠 수는 있지만 실수는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남편은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하고 싶으면 바로 하고, 먹고 싶은 것도 참지 않는다. 말도 그렇다. 훅 내뱉고 본다. 이 말을 들으면 상대방의 기분이 어떨까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실수가 많다. 이런저런 일도 잘 저지른다. 조그만 밭에다 감나무를 심었다가, 호두나무를 심었다가 오미자를 심었다가 이제는 양봉을 한다. 그것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한일이라 많이 힘들어한다. 어떤 준비 없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공부도 없이 한일들이라 그럴 것이다.
그러나 빠른 행동이 어떤 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전기가 고장 나거나 집에 손 볼 것이 있으면 바로 해결한다. 미루는 법이 없다. 오래 전 등단하기 전 백일장에 다닐 때, 전국백일장에서 우수2석을 하고 이제 그만 백일장에 다녀야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 해에 그래도 전국에서 1등을 해야지 하면서 나의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결국 우수1석을 했고, 남편이 아니었다면 그 상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느린 성격이고 일을 잘 미루고, 일하는 것보다는 책보는 걸 좋아한다. 반면 남편은 빠른 성격에다 일하는 걸 좋아하고, 어떤 일이든 미루지 않고 금방 행동으로 옮긴다. 누가 더 좋은 성격인지는 알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나는 숲을 보는 사람이고, 남편은 나무를 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맞지 않는 수레바퀴로 덜컹거리며 40년 이상을 살았다. 그런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남편에게도.

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관기약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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